한겨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지원하고 촉구해야 할 여당이 여전히 당내 갈등에 빠져 있다.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들이 당 공식 회의에서 서로의 발언을 오해한 언쟁을 벌이는가 하면, ‘유승민 퇴진론’ 등 당내 갈등을 부추기는 주장을 이어가며 ‘봉숭아 학당’ 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4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를 시작하면서 “위중한 시기에 우리 정치권이 구태의연한 정치적 공방에 몰두하면 국민 분노와 비난을 부르는 등 불신을 자초할 수 있다”며 “이번 (메르스) 사태 해결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고, 네 편과 내 편이 있을 수 없다. 오늘부터 (메르스가) 진정될 때까지 여야 간 날선 비방이나 정치공세를 자제할 것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소모적인 정치논쟁보다는 집권여당의 수장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이 발언에 당내 ‘친박계’(친박근혜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서 최고위원은 “오늘 메르스 문제만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김무성 대표의 조금 전 발언에는 문제가 있다”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전부 당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본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식으로 나무라지 말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최고위원의 발언은 ‘여야의 공방을 자제하자’는 김 대표의 제안을 최근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벌어지는 ‘친박계’와 ‘비박계’(비박근혜계)의 다툼을 지적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김 대표의 발언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오해해 ‘발끈’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김 대표가 “(친박이 아니라) 야당에 하는 이야기다. (그 말씀은) 오해다”라고 설명하자, 서 최고위원은 그제야 “(메르스 사태에) 당도 대응을 잘하고 있으나 앞으로 의료진과 정치권이 대응해줄 것을 부탁한다”며 발언을 마쳤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김태호 최고위원은 ‘유승민 원내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 최고위원은 전날 당에서 제안한 메르스 당정청 협의를 청와대가 거부한 것을 들며 “이것은 (청와대가) 유승민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며 “당의 단합과 당청 관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유승민 원내대표가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난 1일에 이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또다시 촉구했다.

당내 갈등이 이어지자, 김무성 대표가 진화에 나섰다. 그는 회의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메르스가 진정될 때까지 여야가 서로 정쟁을 벌이지 말자는 제안을 한 것”이라며 ‘친박’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음을 재차 설명했다. 또 그는 친박들의 반대로 임명이 미뤄졌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의 여의도연구원 원장 임명 추진도 철회했다. 김 대표는 이날 이례적으로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모여든 것을 확인한 뒤 작심한 듯 “박 이사장이 여의도연구원장 자리를 사양하겠다는 뜻을 전해와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새로운 인물을 찾는 데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당내 계파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을 봉합하기 위한 조처의 하나로 친박들이 반대해온 ‘박세일 카드’를 접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