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당 혁신위원장을 맡게 된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오찬 회동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당 혁신의 전권을 부여받은 ‘김상곤 혁신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안팎에선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한다. 당내 기득권 질서에서 자유로운 외부 인사라는 점에서 ‘김상곤 카드’가 지지자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을 추진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질 당내 저항과 반발을 돌파하는 데는 취약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2007년 대선 참패 뒤 새정치연합은 주요 선거에서 패배할 때마다 당 안팎의 명망가들을 모아 혁신안을 만들었다. 2012년 이후 나온 것만도 2013년의 ‘정해구 혁신안’,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 참패 뒤 나온 ‘원혜영 혁신안’이 있다. 2010년 10월 전당대회에서 손학규 대표가 당선된 뒤 10개월여 만에 나온 ‘천정배 혁신안’도 빼놓을 수 없다.
주목할 대목은 만들어진 시기가 ‘비상시’든 ‘평시’든, 혁신안을 주도한 게 ‘외부인’이든 ‘내부인’이든, 혁신안들의 운명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1년에 나온 천정배 혁신안은 최고위원회 의결이 지연되다 그해 말 시민통합당과의 당 대 당 통합(민주통합당 창당)으로 사문화됐다. 2013년 문희상 비대위 체제에서 만들어진 정해구 혁신안도 김한길 지도부 출범과 함께 사라졌다. 지난 4월에 나온 원혜영 혁신안도 이른바 ‘김상곤 혁신안’으로 대체될 운명이긴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당내 세력들의 저항과 지도부의 의지 부족, ‘보여주기식’ 혁신안 마련에 치중한 혁신위의 조급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2011년 당 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아 혁신안 마련을 지휘했던 천정배 의원은 2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11년 7월 최고위원회에 최종안을 제출했지만, 차기 당권을 노리던 최고위원들의 이런저런 반대가 이어지면서 의결이 차일피일 미뤄졌다”고 했다. 2013년 혁신안 마련을 책임졌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대선 패배 직후라 당내 관심은 차기 당권이 누구에게 넘어갈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결국 4월 전당대회 뒤 당내 누구도 혁신안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고 했다.
두 혁신안이 좌초한 배경으로는 혁신 자체를 당내 정치와 대외 선전용으로 활용하려 한 당시 지도부의 정략적 태도도 간과될 수 없다. 2011년 외부자문단장을 맡아 혁신안 성안에 참여했던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2012년 대선 출마를 노리던 손학규 대표가 취약한 당내 기반을 강화하고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 혁신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표가 의지가 없으니 계파 수장들로 이뤄진 최고위에서 시간만 끌었던 것”이라고 돌이켰다.
당 전체에 혁신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해구 교수는 “내외부 인사를 절반씩 안배해 혁신위를 꾸렸으나, 계파질서에 매인 내부 위원들끼리 당권 선거 규칙을 두고 싸움을 벌여 외부 위원들은 ‘이런 꼴 보려고 참여했나’라는 자괴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혁신안 마련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결국 당대표와 지도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일 교수는 “안을 만드는 기구가 실행 권한까지 갖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게 안 되면 문재인 대표가 혁신의 성패에 직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원혜영 의원도 “절차적으로는 최고위·당무위 의결이 필요하지만, 혁신위가 안을 만들면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당대표와 지도부의 결단과 정치적 선언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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