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을 보궐선거 후보자들이 5일 광주 서구 운천저수지 야외무대에서 열린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에 참석해 정책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르포]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 현장
4일 오후 광주 풍암호수공원에는 꽃비가 날렸다. 공원 정자에서 비를 긋던 최홍기(65·금호동), 이용대(73·풍암동)씨에게 4·29 서구을 보궐선거에 대한 속내를 물었다. 예상치 못한 ‘현장 정치토론’이 벌어졌다.
“조영택이? 택도 없소. 우리가 ‘문재인당’에 심(힘) 보태줄 일이 머시 있다요? ”(최)
“민주주의는 말이여, 정당정치여. 야당이 똘똘 뭉쳐도 정권교체 될까말까 헌디….”(이)
“시방 그 당은 옛날 민주당이 아니랑께 그러요? 인물로 보나 심지로 보나 천정배요.”(최)
“광주 사람들이 인물만 보고 뽑아주간디? 문재인이헌테 서운하긴 해도, 새누리당 이길라믄 어쩌겄능가?”(이)
팽팽하던 공방은 “선거일 다가올수록 골치아프다”는 두 사람의 푸념으로 5분여만에 마무리됐다. 돌아서는 기자를 향해 누군가 이야기했다. “제대로 짚을라믄 취재 많이 해야쓸 것이요.”
이날 오후 풍암동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선거의 핀트(초점)가 잘못 잡혀가고 있다. 정권의 실정을 바로잡는 선거가 돼야 하는데, 야당이 분열해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후보는 초반 판세가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 견줘 열세임을 시인하면서도 “아직 여론형성이 덜 된만큼, 상임고문단과 (동교동계) 원로들이 움직이면 기류가 바뀌지 않겠느냐”고 했다.
조영택, 중앙당 지원으로 반전 노려
천정배, 50대 이상 지지 ‘불안한 선두’
진보 성향 30~40대 표심이 변수
정의당 강은미 완주 여부도 관심
금호동 선거사무소 개소식 직후 기자와 만난 천정배 후보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표가 천안함 침몰을 (북한이 저지른) ‘폭침’으로 섣불리 규정하는 등 “대선 주자 이미지 제고에만 힘을 쏟으며 당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정체성이) 제대로 된 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광주 민심이 뜨겁다”면서 일각에서 나도는 ‘복당설’에는 선을 그었다. “경천동지할 당의 변화가 없는 한 (복당은) 일말의 고려 가치도 없다”고 강조했다.
드러난 여론조사 지표는 천 후보와 조 후보의 ‘양강 구도’에 정승 새누리당 후보와 강은미 정의당 후보가 3위 자리를 두고 각축하는 양상이다. 주목할 지점은 50대 이상 유권자층에서 무소속 천 후보가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연령대가 새정치연합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릴만큼 충성도가 높은 집단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학)는 “지역기반이 취약한 천 후보가 노장년층에서 앞서는 것은 2월 새정치연합 전당대회를 거치며 심화된 ‘친노 지도부’에 대한 거부감, 지난해 재보선 공천배제에 대한 동정론, 호남의 다른 정치인들에 견줘 비교우위에 있는 인물 경쟁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초반 판세가 투표일까지 지속되리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지난해 6월 광주시장 선거에서도 무소속 강운태 후보는 50대 이상 유권자층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새정치연합 윤장현 후보(현 광주시장)를 줄곧 앞섰지만, 개표 결과는 달랐다. 조영택 후보 쪽은 “후보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고, 중앙당의 지원이 본격화하면 50~60대 지지율은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천 후보 쪽도 ‘불안한 1위’라는 점을 인정한다. 캠프 관계자는 “디제이(DJ)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호남 정치 복원’이란 슬로건으로 새정치연합 고정 지지층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진보 성향이 강한 30~40대 연령층으로 지지세를 확장하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정체돼 있다”고 했다.
남은 기간 선거 판세를 좌우할 핵심 변수는 2가지다. 우선 여론조사에서 8~10%대의 안정된 지지율을 지키고 있는 강은미 정의당 후보의 거취다. 강 후보는 천 후보의 출마선언 뒤 광주지역 시민단체들로부터 천 후보와의 ‘비(非)새정치연합 후보 단일화’를 요구받고 있다. 강 후보는 ‘가치·정책의 공감대 없는 공학적 연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 후보는 이날 “천 후보가 줄곧 주장하는 ‘호남 정치 복원’의 실체가 모호하고, 출마 뒤 행보도 기존 새정치연합 후보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느냐”며 완주 의지를 내비쳤다. 천 후보 쪽도 ‘신당’을 염두에 둔 정의당과의 연대가 이미 확보한 새정치연합 지지층의 이탈을 부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조심스럽다. 두번째는 새정치연합이 내세우고 있는 ‘정권교체론’의 후폭풍이다. 천 후보의 ‘야권재편론’에 맞서 ‘제1야당 강화를 통한 정권교체론’를 내세우고 있지만, 대선이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정권교체론’은 ‘양날의 검’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문 대표가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제1야당 후보에 힘을 실어달라는 호소는 ‘문재인을 대통령 만들어달라’는 메시지로 해석되지 않겠느냐”며 “자칫 ‘반문재인’ 정서가 강한 전통 지지층 결집에 애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조 후보 쪽이 기대하는 박지원 의원과 동교동계의 지원 역시 ‘낡은 기득권 정치 청산’이란 천 후보 쪽 프레임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양강 후보 모두 풀기 힘든 딜레마를 안고 있는 셈이다.
광주/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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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성향 30~40대 표심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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