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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이번에도 선택의 열쇠는 안철수가 쥐고 있다

등록 2014-02-07 20:35수정 2014-02-08 11:55

안철수(왼쪽) 무소속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때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10월24일이었다. 두 사람의 ‘연대’는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으로 이어졌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안철수(왼쪽) 무소속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때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10월24일이었다. 두 사람의 ‘연대’는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으로 이어졌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안철수의 길, 박원순의 길
▶ 안철수(52) 의원과 박원순(57) 서울시장은 새정치 곧 정치혁신을 상징하는 일란성 쌍생아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아름다운 양보’를 통한 협력으로 둘 다 성공했다. 그러나 새정치신당(가칭)과 민주당으로 갈라진 둘은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놓였다. 둘이 협력하는 길을 찾을지 아니면 각자 딴길을 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이기도 한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이번에는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받을 차례 아니냐.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정치도의적으로.”(안철수 의원)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제가 백번이라도 양보해야 되고, 또 기존의 정치적인 어떤 시각과는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다.”(박원순 서울시장)

지난달 하순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각각 언론 인터뷰를 통해 주고받은 말이다. 서울시장 자리가 무슨 흥정거리냐는 각계의 비판을 받자, 양쪽이 서둘러 “인터뷰 과정에서 농담조로 한 말이 왜곡됐다”, “서울시장은 정당과 정치세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자리”라고 각각 해명함으로써 한때의 해프닝으로 사그라졌다.

그러나 양보 발언 파문으로 신당을 추진하는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시장 간의 관계가 굉장히 미묘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혜성처럼 함께 등장했던 새정치의 아이콘인 두 사람이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는 협력하기보다는 자칫 갈등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토요팟 #5] 안철수·박원순 경쟁과 협력사이

서울시장 후보 양보 발언으로
미묘한 관계 드러낸 두 사람
박근혜 정부 견제 위해 야권에서
재선 성공 미션 받은 박원순은
야권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새정치’ 내세워 신당
창당 나선 안철수에게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싸울 대상이다
차별성 드러내기 위해 승패보다
싸움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신당의 영입대상 1호였으나…

먼저 지방선거 구도 자체가 서로 대립적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개인적 욕망을 떠나 박근혜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 재선에 꼭 성공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무를 민주당 등 야권 전체로부터 부여받았다. 이러한 정치적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현실적으로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필수적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새누리당 후보와 일대일로 맞붙어서 총력전을 펴지 않으면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가 얻은 3% 득표가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 한명숙 민주당 후보의 승패를 좌우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현재 양자든 3자든 가상대결에서 박 시장이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일부 나왔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를 허상이라고 보고 있다. ‘정치컨설팅 민’의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새누리당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사는 의미가 없다. 대통령 지지율 등을 고려할 때 막상 여당 후보가 정해지면 일대일 구도로 선거를 치러도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으로서는 여야 일대일 구도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반면에 안 의원의 새정치신당은 이해관계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 정치 전체의 판을 바꾸겠다는 기치를 치켜든 신당으로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모두 똑같이 싸울 대상이다. 모든 전장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거대 양당”에 맞서 치열하게 맞붙어야 한다. ‘새정치 전사’들에게는 이기고 지는 것보다 싸움 자체가 더 중요하다. 기성 정치인들과의 싸움을 통해서 “낡은 세력 대 미래 세력”의 차별성을 확연하게 보여줘야 신당의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안 의원 등 신당의 주요 인사들이 한결같이 이번 선거에서 야권연대나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거듭 밝히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따라서 상징성이 큰 서울시장 후보를 내는 게 신당 쪽 논리에서는 당연하다. 한때 야권연대와 관련해 신당 쪽에서 “우리도 딜레마”(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 “나홀로 가겠다는 것은 현실적인 감각에 문제가 있다”(송호창 의원)는 발언이 나오면서 연대 가능성이 나왔지만, 안 의원은 지난 5일 전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선거만을 위한 정치공학적인 연대는 없다”고 연대 불가론에 거듭 쐐기를 박았다.

한마디로 안 의원과 박 시장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다르다. 박 시장으로서는 재선을 위해 야권연대 등을 통한 안 의원 쪽의 협조가 절실한 반면에 안 의원으로서는 신당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해 박 시장과 맞서는 후보를 내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이런 간격은 사실 안 의원이 지난해 4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로 국회에 진입할 때부터 예고됐다. 안 의원은 선거운동 때부터 민주당 등 다른 야당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둠으로써 독자세력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독자세력화의 종점은 신당 창당이다. 신당이 성공하려면 좋은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참신하면서도 평판이 좋은 박 시장은 영입 대상 1호다. 더구나 박 시장은 안 의원 덕분에 2011년 10월 보궐선거 때 당선됐다. 안 의원으로서는 박 시장에 대해 그만큼의 정치적 채권을 갖고 있다. 신당 쪽에서는 박 시장을 합류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에 안 의원을 돕는 유일한 현역 의원인 송호창 의원은 지난해 10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 시장이 저희와 함께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한테 민주당을 탈당해 안 의원과 행보를 같이하자는 공개적인 요구였다.

그러나 박 시장 쪽은 셈법이 다르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2월 민주당에 입당한 그로서는 당적 문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속 정당이 대중적인 인기가 없더라도 당적을 버리는 순간 곧바로 철새 정치인으로 낙인찍히는 풍토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박 시장은 입당한 이후 거취 문제를 질문받을 때마다 “6월 지방선거는 민주당원으로 임할 것”이라고 공언해온 터였다. 따라서 그로서는 명분을 무엇으로 세우든 지금 시점에서 민주당을 탈당하는 것은 정치적 무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법하다. 기동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이와 관련해 “당적은 편리한 대로 입었다가 벗었다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합류 조건 ‘대선 불출마’ 요구에 묵묵부답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뜨겁게 포옹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미묘하게 만드는 두번째 요인은 잠재적인 차기 대선 경쟁이다.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과 박 시장은 야권의 유력한 차기 주자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세계일보>가 지난달 조사한 차기 대선 주자에 대한 호감도에서도 안 의원(14.9%)과 박 시장(5.1%)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9.5%)과 문재인 민주당 의원(10.6%)과 함께 앞 순위를 기록했다. 특히 박 시장은 재선에 성공하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가 더 단단해질 것이 분명하다. 안 의원이 2012년 대선 때 그랬듯이 박 시장도 2017년 대선에서 언제든지 불려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물론 대선에 대한 두 사람의 접근은 다르다. 안 의원은 2017년 대선 도전을 향해 ‘저돌적’으로 보일 만큼 적극적이다. 애초 창당 시점을 놓고 고심하다가 지방선거 전에 신당을 만들기로 한 것은 ‘2017년 플랜’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연구소장은 “안 의원은 차기 대선 도전에 모든 것을 맞추고 있다. 다음 대선 때는 지난번처럼 킹메이커 구실을 부득이하게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고 반드시 킹이 되겠다는 목적의식이 훨씬 더 강해졌다. 총선이 아니라 굳이 지방선거에서 신당을 만드는 것은 그러한 스케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신당’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2016년 총선을 거쳐 2017년 대선에서 승부를 보려 한다는 분석이다. 즉, 호남의 대표권을 건 민주당과의 싸움을 이번에 해서 이겨야 총선 전에 예상되는 야권 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고, 그래야 안 의원의 대선 가도를 굳힐 수 있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차기 도전에 대한 안 의원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정치권에 적지 않게 돌아다닌다. 안 의원이 국회에 들어온 뒤 신당 창당을 위해 개혁성향 여야 의원 모임인 이른바 ‘6인회’(김성식·정태근·홍정욱·김부겸·정장선·김영춘) 등 여러 인사들을 만났을 때 오갔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안 의원을 만난 몇몇 인사는 합류 조건으로 안 의원에게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차기 대선이 안 의원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신당이 안철수 개인 정당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선에 꿈이 있는 여야의 큰 정치인들도 합류할 수 있다. 대선을 준비하더라도 차차기에 하는 게 어떠냐’고 설득했다고 한다. 안 의원은 이런 제안에 묵묵부답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시장은 차기 대선 불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하는 등 대선과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이 주최한 관훈토론회에서 “차기 대통령선거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상황이 오면 대선에 나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토론자들이 거듭 묻자, 박 시장은 “분명히 답을 했는데 또 한번 확인하는 건 (우리 사회에서) 말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고까지 했다.

그가 공개적으로 차기 대선 불출마를 밝힌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시장에 당선되더라도 대선 출마를 이유로 중도에 사퇴하지 않겠느냐는 서울시민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려는 의도다. 시장 일에 앞으로 4년 동안 전념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신임을 얻으려는 득표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민주당적 이탈을 요구하는 안 의원 쪽에 대한 응답의 성격이다. 즉, 내가 시장이 되더라도 차기에 안 의원과 대선을 놓고 경쟁할 일은 없으니 염려 말라. 그러니 이번 선거에서 나를 도와달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정치판에서 박 시장이 이 약속을 지킬지 아닐지는 속단할 수 없다. 다만, 정치인의 발언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에서 그의 불출마 선언은 앞으로 상당한 짐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든 박 시장이 이처럼 스스로 차기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하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안 의원과 잠재적 경쟁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를 안심시켜야 할 정도로 박 시장의 정치적 비중이 커진 것이다.

박 시장의 낮은 자세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 쪽에서는 그를 잠재적 대선 경쟁자로 경계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안 의원 자신은 경쟁의식을 한번도 밖으로 내비친 적이 없지만, 신당에 참여한 한 인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 시장은 새끼 호랑이다. 안 의원이 차기 대선에서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 냉혹한 권력세계에서 아름다운 양보는 있을 수 없다. 잠시 그렇게 비치도록 할 뿐이다. 안 의원이 차기 대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에서 박 시장의 사정을 봐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신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소아병적인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대선과 관련해 우리 내부에서 박 시장을 그런 식으로 대하자는 얘기는 전혀 없었다. 안 의원 마음속에도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당 쪽은 박 시장에게 좀더 가시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안 의원의 신임이 두터운 김성식 공동위원장은 지난 5일 기자와 만나 박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관련해 “먼저 박 시장은 정치적 목표가 시장 재선인지 그게 전부인지 답해야 한다. 기존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던 초심을 이번 선거 과정에서 어떻게 관철하려고 하는지가 안 보인다.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변화를 어떻게 가져올지에 대해서 박 시장이 먼저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계안 새정추 공동위원장도 지난달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박 시장이 ‘어떻게 해야 시장으로서 더 일을 할 수 있는 건가’에 대해 고민하리라고 생각해요. 지금 그런 심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봐요”라며 “박 시장이 답할 차례”라고 밝혔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만으로는 새정치의 동지로 여길 수 없으니 행동으로 보이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박 시장으로서는 말 외에는 내놓을 것이 별로 없다는 입장이다.

2017년 대선 도전에 적극적인
안철수에게 박원순은 경쟁자
민주당을 이겨 대선 가도를
굳히려는 안철수 쪽은 박원순의
정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

새정치 실천·전략적 관점에서
연대 가능성 점치기도 하지만
각자의 길 갈 가능성은 여전
우회로 없는 박원순과 달리
안철수는 선택지가 다양하다


최악의 경우에는 3자 구도

결국 신당으로서는 독자적인 서울시장 후보를 내는 쪽으로 간다는 입장이다. 안 의원은 그동안 여러차례 “지방선거의 상징인 서울시장을 포함해 광역 17곳 모두에 후보를 내겠다”는 뜻을 피력해왔다. 실제로 안 의원이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소장을 맡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직접 권유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김성식 위원장도 “우리가 서울시장 후보를 내면 곤란하다는 고정관념으로 보면 안 된다. 민주당은 내면서 우리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신당 창당을 막으려는 의도다. 우린 우리의 미션에 충실할 뿐이다”고 말했다.

안 의원 쪽의 ‘연대 불가, 독자 후보 불가피론’에 대해 박 시장 쪽은 ‘신당으로서는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기동민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신당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17개 광역단체장 후보를 다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전략적 연대 운운할 수는 없다. 그 뒤에 어떻게 수습할지는 시간이 남아 있기에 지금 이런 상황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3자 구도로 갈 수도 있다”며 “그렇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기에 그저 시정에 충실할 뿐이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과 박 시장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정치권 바깥에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정치신인들이다. 두 사람은 각각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거나,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로서 참여와 봉사, 나눔 활동을 오랫동안 해왔다. 두 사람은 또 정치권의 끊임없는 유혹을 거부했다. 안 의원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등 각 정권으로부터 정보통신부 장관과 국회의원직, 심지어 국무총리 제안까지 받았다. 박 변호사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 등 요직을 제의받거나 국정원장 후보에까지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두 사람의 본격적인 인연은 2003년 박원순 변호사의 ‘아름다운가게’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대표가 일일점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안 대표는 아름다운재단의 이사를 맡기도 했으며, 시민들에 의한 싱크탱크를 표명한 ‘희망제작소’에서 박 변호사의 요청으로 오랫동안 강의도 하는 등 우의를 다졌다.

이처럼 긴밀했던 두 사람은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시장직을 사퇴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교롭게도 각기 따로 출마를 결심했다. 당시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던 박 변호사는 강원도 백복령에서 이명박 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젊은층과 공감폭을 넓혀가던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는 법륜 스님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최상용 고려대 교수 등 정치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을 모색하던 동료들에게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의향을 밝혔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서로 뜻이 겹치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몇차례 이메일 교신 끝에 박 변호사가 하산한 9월6일 오후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17분의 만남 끝에 지지율 50%의 안 교수는 5%에 불과한 박 변호사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다. 제가 출마 안 하겠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이 되셔서 그 뜻 잘 펼치길 바란다”며 후보 자리를 전격적으로 양보했다. 시간이 흐른 뒤 ‘아름다운 양보’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그 과정에 관여했던 윤 전 장관은 <시사인>과의 인터뷰(2011년 11월25일)에서 ‘안 교수가 출마하겠다고 한 지 2~3일 지나 아버지 반대 등으로 인해 못 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고 그냥 안 하겠다고 하면 장난한 것이 되니 빠지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박 변호사가 정당이 아니라 시민 후보라는 전제에서 그 사람에게 양보하고 빠지면 명분이 선다’는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안 의원과 가까운 강인철 변호사는 <신동아>와의 인터뷰(2012년 1월호)에서 “그 부분은 아주 일부분이다. 윤 전 장관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며 윤 전 장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런 논란과 관계없이 두 사람의 그날 포옹은 자기 몫만 챙기려는 기성 정치인들의 모습만 봐온 국민들에게 감동 자체였다.

서울시장 선거전이 막판에 박빙으로 치달으면서 박원순 후보 진영에 위기감이 감돌자, 안 교수는 투표일을 이틀 앞두고 혼자서 선거사무소를 방문해서 응원하는 염원을 담은 편지를 전달했다. 그의 등장만으로도 선거는 사실상 끝이었다.

“지지자 동일한 두 사람은 좋든 싫든 한몸”

우의에 바탕을 둔 연대와 조건 없는 협력으로 새 서울시장이 탄생한 지 2년여가 흐른 지금 당시의 두 주인공은 방향은 같지만 갈래는 다른 길 위에 서 있다. 새정치의 대표 격인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협력할까 아니면 경쟁할까?

먼저, 새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힘을 합칠 가능성이다. 각개약진했을 경우 결과가 참담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아무리 좋은 명분과 원칙을 내세우더라도 신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면 결과는 최고 기득권층인 새누리당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안 의원이 말하는 새정치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따라서 어떤 형식이 되든 결국 신당은 서울에 후보를 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안 의원 쪽에서도 서울시장 후보 문제를 고민하는 소리가 나온다. 신당의 한 핵심 인사는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호남 민심이 중요하다. ‘중요한 자리를 새누리당에 헌납할래, 안 의원과 박 시장이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너희끼리 서로 싸울래’ 하는 여론이 솔직히 부담”이라고 말했다.

정치 전략적인 관점에서 연대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도 “박 시장은 안 의원의 지지로 당선됐다. 박 시장이 시장 일을 하면서 크게 잘못했다거나 문제가 많았다면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게 설명이 된다. 하지만 일을 잘하고 있다고 대체로 시민들한테 평가받고 있는데 단지 당이 다르다고 해서 독자 후보를 내겠다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더구나 박 시장이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지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 따라서 그런 모험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지난 보궐선거 때처럼 이번에도 안 의원이 박 시장의 당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쪽을 택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당이 독자 후보를 내서 안 의원과 박 시장이 각자의 길을 갈 가능성도 여전히 크다는 분석도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연구소장은 “안 의원의 전략적 포인트는 민주당과 친노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당으로서는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민주당과 후보연대나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도 “신당이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연대를 부정했지만 너무 많이 나갔다. 그러는 바람에 지금 마치 야권연대나 선거 연합은 구태정치인 것처럼 인식돼 버렸다. 안 의원 본인의 입으로 연대를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후보를 안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이 만들어지고 후보가 가시화되면 중앙당에서 통제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선택의 열쇠는 2011년 보궐선거 때처럼 일단 안 의원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에게는 우회로가 없는 반면에 안 의원의 손에는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여러 장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박 시장과 함께 가는 방안을 택할지, 그를 밟고 갈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방관하는 길을 택할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어떤 길을 택하든 안 의원과 박 시장의 정치적 운명은 동일한 궤적을 그릴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과거 김대중과 김영삼의 지지자는 서로 배타적이었지만, 안철수·박원순의 지지자는 동일하다. 따라서 두 사람은 좋든 싫든 한몸이다. 같이 떨어지든가 같이 올라가든가 하지 한 사람이 살고 한 사람은 죽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며 “따라서 최선의 카드는 안 의원의 대중적 지지가 박 시장에게 득이 되고, 박 시장의 성공이 선순환적으로 안 의원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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