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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국외-대북정보-방첩 분리해야 정치개입 논란 막는다

등록 2013-07-02 20:17수정 2013-07-03 07:19

국가정보원 청사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곡동 교량 구조물 사이로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가정보원 청사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곡동 교량 구조물 사이로 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정원 개혁 더 늦추면 안된다
③ 조직 어떻게 바꿔야 할까 <끝>
국내정보 무차별 수집
국정원 권한서 떼내야
정치개입 논란 막는다

“국정원 이제 겁 안 나지요? 개혁을 할 과제가 얼마나 있는지, 제도적으로 어떤 개혁을 해야 되는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한다면, 지금처럼 가면, 제도적으로 크게 개혁하지 않아도… 국정원은 대통령이 민주적이면 민주적인 기관이 되고, 그전까지는 못 그랬습니다만, 지금 와 있는 수준은 대통령이 나쁜 일 시키지 않으면 혼자서 나쁜 일 하지 않을 수준까지 와 있는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국가정보원이 갈 길을 열어준 이 ‘결정적 발언’은 7년여 전인 2006년 3월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나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손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이렇게 말했다. 2005년 ‘안기부 엑스(X)파일’ 사건이 터지고, 불법 도·감청에 관여한 전직 국정원장 2명이 구속기소되고, 그 여파로 정치권에서 반년 넘게 국정원 개혁 작업을 추진했지만, 정작 국정원의 내부 반발에 부닥쳐 속도가 나지 않던 시점이다. △국내-해외 정보업무 분리 △국내 정보 수집 금지 △대공수사권 폐지 △예결산 심사 강화 등의 국정원 개혁 논의는, 취임 초기 역대 가장 강력한 국정원 개혁을 천명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정보기관 선용’ 발언과 함께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정보기관을 좋은 일에만 쓰겠다는 대통령의 ‘선한 의지’가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불과 2년 뒤 이명박 대통령이 확인해줬다. 정보 전문가들은 비대해진 국정원의 기능과 업무를 쪼개고, 예산 등에 대한 의회의 통제 영역을 넓히는 것만이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반복돼 온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논란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 대안은 많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서 정치공작·불법사찰의 길을 터주고 있는 국내 보안정보 수집·배포 권한을 떼어 내야 한다는 데는 전문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의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이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대북 정보-해외 정보’ 파트를 각각 분리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원 개혁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참여정부 초기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을 통한 국정원 개혁이 시도됐지만 국정원 업무의 큰 틀은 유지한 채 진행됐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인 국정원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 국정원 조직을 사실상 백지상태에 놓는, 큰 틀부터 깨버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미국 정보공동체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직 쪼개서 전문성 높이고
예산·인사 업무 분리시키면
국정원장 ‘전횡’ 막을 수 있어
“대공수사권, 검경으로” 제안도

미, CIA·FBI 등 16곳서 정보 수집
국가정보국서 조정·통제 권한

전문가들은 국정원 기능을 쪼개어 △해외정보처 △북한정보처 △방첩수사처 등으로 독립시키고, 국정원은 여기에서 올라온 정보들을 통합·조정하는 역할만 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중앙정보국(CIA·해외)-연방수사국(FBI·국내)-국토안보부(DHS·테러) 등 16개 정보기관이 정보를 수집·생산하고, 이를 조정·통제하는 권한을 가지는 국가정보국(DNI) 체제로 ‘정보공동체’가 운영된다.

국정원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정보 수집·분석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국정원의 정보통합 기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이러한 기관 분할에 반대한다. 이런 반론은 참여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정원이 내놓은 ‘대안’은 “대통령과 국정원 직원들을 믿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조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조직보호 본능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조직을 쪼개면 각 조직의 전문성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권한이 분리되면 현 국정원 기조실이 하고 있는 예산·조직·인사 업무도 당연히 분리된다. 각 기관의 인사·예산권이 커지면 국정원장의 권한은 축소될 수 있다”고 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정보기관의 기획·예산 조정 권한 등을 가지는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위원회의 설치가 논의된 적이 있다. 최근까지 국정원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권한을 분산시키고 기관을 새로 만들더라도 결국 정보를 해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된다. 정보기관 활용은 대통령의 몫이고,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다”며 기관 분할에는 부정적 뜻을 나타내면서도 “미국 같은 시스템이라면 고려해 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정보의 ‘양대 산맥’은 국정원과 경찰이다. 국정원과 일부 정보 전문가들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을 금지할 경우 정보 수요처(청와대) 입장에서는 두 기관의 정보 경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또 경찰 정보가 왜곡됐는지를 판단할 (비교·검증의) 대상이 없어진다”는 주장을 편다. 정보기관 사이의 경쟁과 ‘크로스체크’(교차점검)를 통해 양질의 정보가 생산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국정원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그런 식이면 북한 정보 수집기관도 국정원 외에 또 있어야 한다. 국정원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봤느냐”며 일축했다. 정보 분석 업무를 몇 겹으로 강화하면 정보 왜곡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 정보기관들처럼 성격이 완전히 다른 정보 업무와 수사 업무를 분리해, 국정원이 가진 대공수사 기능을 검찰이나 경찰, 혹은 따로 구성된 대공수사처에 넘겨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는 국정원 개혁 토론회에서 “보안과 밀행성을 속성으로 하는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가지게 되면 수사 절차에 대한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유혹도 많다 “국정원을 비롯한 각 기관 정보요원들의 국회 출입제도를 폐지하고 그 역량을 대북 정보 수집이나 수사 기능으로 돌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조선일보> 2012년 12월31일치 5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국정원 개혁에 대한 첫 구상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인수위의 이 내부 검토안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사정기관에서 정보업무를 하는 한 관계자는 “(기관출입 폐지는) 국정원 보고서를 정식으로 받아보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부 출범 뒤) 정식으로 보고를 받아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정보라는 것이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국정원 국내 파트를 담당했던 한 전직 고위 인사는 “그전에는 평생 한 번 만날까 싶은 깜짝 놀랄 만한 내용들이 하루에도 3~4건씩 책상에 올라온다”고 했다. 대통령의 선용 의지는 국정원이 올리는 이런 민감한 국내 정보에 의해 계속 시험을 받게 된다. 국정원 지원자들의 수험 필독서인 <국가정보론>을 지은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참여정부 초기 국정원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에 쓴 칼럼에서 국정원 분할과 관련해 “국가안보는 안과 밖을 구분하기 어려우며, 이를 국내와 해외로 분리할 경우 두 개의 공룡조직이 출현할 수 있다른 이유로 (참여정부) 당시에는 반대했다”면서도 “지금 돌아보면 통합형 정보기관이 아닌 분리형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당내 논의는 계속해야 하지만 국정원이 정보기관 본래 역할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원래 기능인 간첩 잡고 해외 정보,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한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진성준·정청래·민병두 의원이 발의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대기중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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