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1일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부결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진영 정책위의장 등 원내지도부 총사퇴로 이어졌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본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대선길에 불어닥칠 파장을 막기 위한 발빠른 결정이었지만, 후폭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이 원내대표의 사퇴를 놓고 친박계가 번복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후속대책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

체포동의안 부결에 새누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황우여 대표는 본회의가 끝난 뒤 “국회 내부적으로야 부결 논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크게 비판하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당직을 맡은 한 초선 의원은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지가 얼마 안 돼 이렇게 부결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처음 의결한 쇄신안이었다는 점에서 당 지도부와 박근혜 경선캠프는 동의안 부결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선캠프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민과의 약속이 결과적으로 공수표가 됐다”며 “당이 박 전 위원장을 도와주기는커녕 대선출마 선언 바로 다음날부터 발목을 잡고 말았다”고 말했다. 충청지역을 방문중이어서 이날 본회의에 불참한 박근혜 의원은 보고를 받고 매우 놀란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 두달째였던 이 원내대표가 전격 사퇴한 것은 정국 운영에 끼칠 파장을 최소화하고,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한 원내부대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해놓고 이를 지키지 못했으니 원내대표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밤 황우여 대표는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태에 따른 후속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에서 이정현 최고위원과 서병수 사무총장 등 박 의원의 측근들은 “원내대표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며 이 원내대표의 사퇴 반려를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황 대표도 이 원내대표에게 퇴진을 만류했다.

최고위원회 직전까지만 해도 당내에서는 선출직인 원내대표는 사의 표명만으로도 퇴진 절차가 완료된다는 견해가 많았다. 특히 이 원내대표의 사퇴 뜻이 완강해 사퇴는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저녁 회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박 의원의 측근들이 앞장서 당장 사퇴를 반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엔 박 의원의 의사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박 의원의 뜻이 아니라면 두사람이 그렇게 하겠느냐”며 “이 원내대표가 퇴진하면 대선구도가 흐트러진다고 박 의원이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원내대표는 사퇴를 번복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13일 의원총회를 열어 재논의하기로 했다는 최고위원회의의 결과를 듣고도 이 원내대표는 사퇴하겠다는 뜻이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동의안 부결에 대해 야당은 ‘여당 무죄, 야당 유죄’라는 신조어를 내놓으며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이 말하던 쇄신 의지는 어디로 갔나. 자신의 특권은 누리고 남의 특권만 내려놓는 것이 새누리당의 쇄신인가”라고 비판했다.

김종철 김보협 기자 phillki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박근혜에 5·16 묻는 건 세종에 이성계 묻는 것”
■ 김병화-브로커 통화뒤 제일저축 수사 ‘개인비리’로 선그어
■ 새누리 “입이 열개라도…” 박근혜에 불똥 차단 안간힘
■ 이 대통령, 일정 돌연 취소…‘형님 구속’ 사과 언제 할까
■ 이해찬 “거짓증언 강요한 검사 이름 밝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