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만남] 진보정당운동 산증인 권영길
‘20년 농사’ 한꺼번에 날려버려
중앙위 폭력사태 석고대죄 해야
이석기·김재연 ‘진보’ 위해 사퇴를
‘20년 농사’ 한꺼번에 날려버려
중앙위 폭력사태 석고대죄 해야
이석기·김재연 ‘진보’ 위해 사퇴를
진보정당운동의 주역이자 산증인 권영길을 지난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진보정치인 중 유일의 재선 의원이었지만 지역구를 포기하고 백의종군하고 있는 백전노장에게 통합진보당 사태의 원인과 대책, 야권연대와 정권교체의 전망을 묻기 위함이었다. 노동중심성을 강화하는 진보정당 재건설을 위해 새로 씨를 뿌리겠다는 그의 쩌렁쩌렁한 목청과 불끈 쥔 주먹에서 명분을 중시하고 의기로 충만한 ‘관우’를 느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트위터 @patriamea
-1995년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 1997년 국민승리21 대통령후보, 2002년 민주노동당 창당 및 대표, 16대 대통령후보, 2004년 국회 진출, 2007년 17대 대통령후보, 2008년 국회의원 재선…. 일관되게 진보정치의 길을 걸어왔기에 진보정치의 원로라고 불린다.
“계속 현장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현장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원로란 호칭은 좀 그렇다, 은퇴한 사람의 느낌이 들어서….(웃음) 대접받는 원로도 안 맞는 것 같다. 정리해고 후 22명의 노동자가 목숨 잃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런 야만의 시대, 부도덕한 낙하산 사장이 언론노조원을 해고하고 징계하는 이 야만의 시대에 원로로 살 수 없다.”
-최근 문성현, 천영세 두 전직 민주노동당 대표와 함께 혁신비대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을 쇄신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심정이 어떤가?
“(두 주먹을 쥐며) 20년 농사를 하루아침에 한 방에 날려버린 비통한 심정이다. 당내 패권주의 세력의 행태로 진보세력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다. 문제해결이 신속히 그리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통합진보당 내홍은 극우세력의 기득권 유지와 대선 전략을 위한 먹잇감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을 반대했다. 그런 통합은 노동 없는 진보정치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실제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 당적은 갖고 있었지만 당 활동은 안했다. 당적만 갖고 있는 당원이었다. 사실은 당적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탈당하려고 했나?
“그렇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있어 너무 상처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총선 이전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뛰었고 그럴 전망도 보였다. 밥그릇이 커질 것 같으니 당권파가 무리수를 써서 밥을 독차지하려 하다가 밥솥을 통째로 엎어버린 형국이다. 그런데 부실·부정선거라는 진상조사위 발표에 대하여 과거에도 있었던 ‘관행’이라고 변호하는 이도 있다.
“과거 투표율을 높이려는 목적이나 당원의 급박한 사정을 이유로 투표 강권이나 대리투표가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옹호가 아니라 청산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소스코드를 열었다는 게 무어냐. 투표 중간에 투표함을 열어본 것과 같은 거다. 어떠한 이유로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 중앙위 폭력사태는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진보정치세력 전체에 대한 살해 행위다. 당원들이 당 중앙위 단상에 올라가 당 대표를 폭행하고 집단 난투극을 벌이다니…, 이게 어떻게 용납될 수 있느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거다. 이 모두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다.”
-‘볼셰비키’가 아니라 ‘돌쇠비키’가 설치는 것 같다.(웃음) 21세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수준의 진보로 혁신하지 않고 과거의 관성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런데 이석기, 김재연 두 의원 등 제명 대상자 4명은 억울하다며 명예회복을 호소하고 있다.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목청을 높이며) 그러나 진보정당의 발전과 집권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 총선 후 창원에서 거의 모든 노동현장을 방문하고 시민들도 만나는데 “너희들 잘못해놓고 빨리 정리 안하고 서로 싸움질이나 하냐”라는 질책을 듣는다. 치졸한 당권 싸움으로 되면서 당은 더 추락했다. 진보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겠다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명예는 물론,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 전체의 명예를 위해 즉각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자신의 처신으로 정치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활동하고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두 의원뿐만 아니라 연관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분노한다. 지금이라도 그간의 과정은 전부 다 묻고, 거듭 말하지만 한국 진보정치의 앞날을 위해, 진보정당의 집권을 위해 내가 희생하겠다는 차원에서 정리를 해야 한다.”
대표·최고위원·지구당위원장 선거뒤
민주노총 중심 진보세력 원탁회의서
노동 중심성 강화 재창당 이룩해야 -경선에서 부실·부정이 확인되면 그로 인한 수혜가 무효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 정파를 당보다 우위에 놓고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패권주의 문제 외에 노선의 문제도 있다. 북한인권, 북핵, 3대 세습 문제에 대하여 이정희 전 대표, 이석기 의원 등은 답을 회피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여 왔다. 반면 박원석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당 새로나기특위는 이 문제에 명확한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호한 말투로) 그 세 가지 문제를 가지고 통합진보당 전체를 ‘종북’ 세력이라고 몰며 죽이려 하는 세력에게 분노한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강령에 ‘한반도 비핵화’를 분명히 내걸고 있다. 남쪽 전술핵은 물론 북한 핵도 인정하지 않는 거다. 과거 북한이 자위적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발언한 당원이 있었지만, 당은 그 당원 개인의 견해일 뿐이라고 공식 정리했다. 3대 세습도 동의하지 않지만,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과 대화와 교섭을 거부할 수 있느냐. 통합진보당 구성원 다수는 ‘북한인권, 북핵, 3대 세습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장과 똑같다. 제가 볼 땐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북한 이러이러한 문제 있다. 그러나 북한 인민이 굶어죽고 있지 않느냐.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게 급선무 아니냐. 북한 정권과도 대화하고 협상하며 풀어가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보는 거다. 이렇게 우리 입장에서는 억울한 게 많다. 그러나 국민들이 볼 땐 아니다. 그러니 쇄신해야 된다.” -통합진보당 대표, 최고위원, 지구당위원장 선거가 진행중이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세력이 다시 당의 얼굴로 복귀할 수도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이 선거로 이어지는 것에 반대했다. 비상대책위는 일시적으로 당헌과 당규가 정지되는 것이니만큼, 비대위원장이 비상대권을 가지고 과감한 정리를 했어야 했다. 화합 운운할 때가 아니니까.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그렇게 못하는 천성을 갖고 계셔서….(웃음)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보니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진보정치 앞날이 달려 있다. 선거 과정에서 당의 문제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토론하고 쇄신해야 살지, 정파 대결로만 가면 다 죽는다.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해 걱정이 매우 많다.” -그런데 2007년 대선 시기에는 당권파의 지지로 대선 후보가 됐다는 비판이 있다. “그 점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한 번도 얘기를 안했다. 사실관계는 다르지만,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규정되든 말을 안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진보신당 분들과 얘기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적 상실감이었구나. 난 당을 만들고 대표를 하면서 늘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외톨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진보신당 분들에게는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걸 풀어내지 못하고 팩트를 따지며 접근한 내가 잘못이었다. 그래서 과거 분당 과정에 권영길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던 거다.” 민노당때부터 ‘한반도 비핵화’ 주장
당원 대다수 ‘북한 3대 세습’ 거부감
진보당 전체 ‘종북’ 모는 세력에 분노 -‘진보정당이 노동자를 배신하면 껍데기’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의 대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혁신돼야 하나? “과거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법 제정, 한-미 에프티에이(FTA), 허세욱 열사 분신 등을 언급하며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에 반대했다. 진보정당의 핵심인 노동중심성이 사라지면 진보정당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의 재구성에 민주노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통합진보당 선거 끝나면 제일 먼저 재창당을 공식 선언해야 된다. 이는 통합진보당에서도 이미 결의된 것이고, 강기갑 위원장도 여러 차례 장담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뭐냐. 노동을 중심에 세우는 것이다. 다시 새롭게 씨앗을 뿌려야 한다. 10년 농사를 다시 지어야 한다. 수확을 언제 할 거냐고 조급해해선 안 된다. 1~2년 내에 성과를 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먹고 실천해야 국민들이 다시 받아줄 것이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을 가슴에서 지웠다.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국민이 이미 버렸는데 무엇에 집착하려 하는가. 통합진보당 창당 이전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다시 민주노총이 중심에 서야 한다. 통합진보당, 해산된 진보신당, 그 외 여러 진보좌파 그룹을 다 모아 원탁회의를 만들고, 여기서 재창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최근 노회찬 의원이 “제대로 쇄신하지 못하면 진보정당 쪽 사람들도 민주당 안의 ‘왼쪽 방’을 쓰게 될까봐 걱정한다”고 토로했다. 국민승리21 대통령후보 시절 비서였던 박용진씨는 민주당 대변인이 되었다. 민주노동당 최고의 정책전문가였던 손낙구씨도 민주당으로 갔다. 집이 무너지니까 옮겨가는 상황 아닌가. “간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했으면 안 갔을 거다. 언급한 분들 외에 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당시 국민승리21 대변인이었다. 이인영 의원도 같이 활동했고…. 국민승리21 당시에는 거의 모든 진보 세력, 진보 인사, 개인이든 조직이든 전부 결합했다. 고민하면서 나에게 상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결심했다고 하면, 나는 “가라, 그러나 파견이다. 소환하면 언제든지 와라”라고 말한다. 진보정당이 잘해야 한다. 국민승리21을 조직하여 대선을 치른 뒤 희망 없다고 다 떠났지만 18명으로 새로 시작했다.” 총선때 야권연대는 정치공학 중심
정책중심의 ‘가치연대’로 가야
민주-진보당-안철수 3각구도 돼야 -총선 시기 야권연대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야권연대가 정치공학적으로만 이루어졌다. 정책 중심의 ‘가치연대’가 되어야 하는데…. 아까 정파 패권주의를 지적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게 들어간다. 국회 원내교섭단체 구성하고 대통령선거 이겨 공동정부 구성하면 우리 자리가 몇 개 생긴다, 이런 것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사람을 무리하게 출마시키는 ‘알박기’도 나타났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실패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10명이었다. 분당 이후 5명이었다가 13명으로 늘어난 것을 승리라고 할 수 없다.” -총선은 끝났고 대선이 다가온다. 지난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3주기 경남추모문화제에서 “문재인, 김두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덕담인가 예언인가?(웃음) “덕담이기도 하고, 실제 바람이기도 했다.(웃음) 내가 1997년과 2002년 대선 출마할 때 ‘권영길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과 압박을 많이 받았다.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권영길이 있음으로써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도운 셈이 되었다. 예컨대, 당시 김대중 후보는 완전히 ‘빨갱이’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권영길이 나와서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정책을 주장하면서 차별화가 된 것이다.” -진짜 ‘빨갱이’가 나왔으니 그런 건가?(폭소) “노무현 후보 때도 마찬가지로 보완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2007년 출마 시에는 대세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보았고.” -올해 대선 구도를 어떻게 보는가? “민주당, 새로 만들어질 진보정당, 안철수 개인 또는 안철수 지지세력, 이렇게 삼각구도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새누리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고 야만시대를 끝낼 수 있다. 안철수 개인 또는 안철수 지지세력의 정체성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야권세력으로 들어와야 한다. 안철수 원장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그리고 억지로 당내에 끌어들여서도 안 된다. 절차에 있어서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후보가 먼저 단일화되어야 한다. 다음에 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이 단일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일화 과정에서 독일식 국회의원 정당명부비례대표제와 프랑스식 대선 결선투표제가 공동정책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진보정당이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전제로 해서 내각제 개헌을 주장해야 할 때가 있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야만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이 감동을 주고 흥행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감동 있는 절차를 통하여 감동 주는 후보로 선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은 다른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두 주먹을 쥐며)우리, 이길 수 있다.” -가벼운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과거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저에게 다 같이 사직구장에 모여 ‘자이언츠’ 응원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그런데 창원에 ‘다이노스’가 생겼다. 지지 팀을 바꿀 것인가? “실제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어떻게 딱 집어냈나.(웃음) 우리는 ‘자이언츠’는 좋아해도 ‘롯데 그룹’은 안 좋아하지 않느냐. 롯데 구단, 짜다. 팬서비스도 시원찮다. 진보정치를 상징하는 노동자 도시 창원의 정치인으로 ‘다이노스’를 외면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이노스’로 바꾸기 전에 사직구장에 다 가서 “우리는 남이다”라고 한번 외치면 어떨까?(폭소) “축구는 서민 스포츠, 특히 노동자의 스포츠 아닌가. ‘다이노스’가 그런 느낌의 야구팀이 되면 좋겠다.” 정리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용산참사 다큐 ‘두개의 문’ 돌풍
■ “MB 죽이겠다” 112에 전화법원 “협박 성립안돼 무죄”
■ 수원 여성, 110시간 끔찍한 고통 겪어
■ 추적자·유령,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 빵 명장들이 전하는 동네빵집 생존법은?
진보정당 운동의 주역으로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를 포기하고 백의종군하고 있는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왼쪽)가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 정원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민주노총 중심 진보세력 원탁회의서
노동 중심성 강화 재창당 이룩해야 -경선에서 부실·부정이 확인되면 그로 인한 수혜가 무효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 정파를 당보다 우위에 놓고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패권주의 문제 외에 노선의 문제도 있다. 북한인권, 북핵, 3대 세습 문제에 대하여 이정희 전 대표, 이석기 의원 등은 답을 회피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여 왔다. 반면 박원석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당 새로나기특위는 이 문제에 명확한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호한 말투로) 그 세 가지 문제를 가지고 통합진보당 전체를 ‘종북’ 세력이라고 몰며 죽이려 하는 세력에게 분노한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강령에 ‘한반도 비핵화’를 분명히 내걸고 있다. 남쪽 전술핵은 물론 북한 핵도 인정하지 않는 거다. 과거 북한이 자위적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발언한 당원이 있었지만, 당은 그 당원 개인의 견해일 뿐이라고 공식 정리했다. 3대 세습도 동의하지 않지만,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과 대화와 교섭을 거부할 수 있느냐. 통합진보당 구성원 다수는 ‘북한인권, 북핵, 3대 세습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장과 똑같다. 제가 볼 땐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북한 이러이러한 문제 있다. 그러나 북한 인민이 굶어죽고 있지 않느냐.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게 급선무 아니냐. 북한 정권과도 대화하고 협상하며 풀어가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보는 거다. 이렇게 우리 입장에서는 억울한 게 많다. 그러나 국민들이 볼 땐 아니다. 그러니 쇄신해야 된다.” -통합진보당 대표, 최고위원, 지구당위원장 선거가 진행중이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세력이 다시 당의 얼굴로 복귀할 수도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이 선거로 이어지는 것에 반대했다. 비상대책위는 일시적으로 당헌과 당규가 정지되는 것이니만큼, 비대위원장이 비상대권을 가지고 과감한 정리를 했어야 했다. 화합 운운할 때가 아니니까.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그렇게 못하는 천성을 갖고 계셔서….(웃음)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보니 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진보정치 앞날이 달려 있다. 선거 과정에서 당의 문제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토론하고 쇄신해야 살지, 정파 대결로만 가면 다 죽는다.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해 걱정이 매우 많다.” -그런데 2007년 대선 시기에는 당권파의 지지로 대선 후보가 됐다는 비판이 있다. “그 점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한 번도 얘기를 안했다. 사실관계는 다르지만,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규정되든 말을 안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진보신당 분들과 얘기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적 상실감이었구나. 난 당을 만들고 대표를 하면서 늘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외톨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진보신당 분들에게는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걸 풀어내지 못하고 팩트를 따지며 접근한 내가 잘못이었다. 그래서 과거 분당 과정에 권영길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던 거다.” 민노당때부터 ‘한반도 비핵화’ 주장
당원 대다수 ‘북한 3대 세습’ 거부감
진보당 전체 ‘종북’ 모는 세력에 분노 -‘진보정당이 노동자를 배신하면 껍데기’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의 대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재구성되고 혁신돼야 하나? “과거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법 제정, 한-미 에프티에이(FTA), 허세욱 열사 분신 등을 언급하며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에 반대했다. 진보정당의 핵심인 노동중심성이 사라지면 진보정당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진보정당의 재구성에 민주노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통합진보당 선거 끝나면 제일 먼저 재창당을 공식 선언해야 된다. 이는 통합진보당에서도 이미 결의된 것이고, 강기갑 위원장도 여러 차례 장담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뭐냐. 노동을 중심에 세우는 것이다. 다시 새롭게 씨앗을 뿌려야 한다. 10년 농사를 다시 지어야 한다. 수확을 언제 할 거냐고 조급해해선 안 된다. 1~2년 내에 성과를 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마음먹고 실천해야 국민들이 다시 받아줄 것이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을 가슴에서 지웠다.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국민이 이미 버렸는데 무엇에 집착하려 하는가. 통합진보당 창당 이전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다시 민주노총이 중심에 서야 한다. 통합진보당, 해산된 진보신당, 그 외 여러 진보좌파 그룹을 다 모아 원탁회의를 만들고, 여기서 재창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최근 노회찬 의원이 “제대로 쇄신하지 못하면 진보정당 쪽 사람들도 민주당 안의 ‘왼쪽 방’을 쓰게 될까봐 걱정한다”고 토로했다. 국민승리21 대통령후보 시절 비서였던 박용진씨는 민주당 대변인이 되었다. 민주노동당 최고의 정책전문가였던 손낙구씨도 민주당으로 갔다. 집이 무너지니까 옮겨가는 상황 아닌가. “간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비난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제대로 했으면 안 갔을 거다. 언급한 분들 외에 민주당 유기홍 의원은 당시 국민승리21 대변인이었다. 이인영 의원도 같이 활동했고…. 국민승리21 당시에는 거의 모든 진보 세력, 진보 인사, 개인이든 조직이든 전부 결합했다. 고민하면서 나에게 상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결심했다고 하면, 나는 “가라, 그러나 파견이다. 소환하면 언제든지 와라”라고 말한다. 진보정당이 잘해야 한다. 국민승리21을 조직하여 대선을 치른 뒤 희망 없다고 다 떠났지만 18명으로 새로 시작했다.” 총선때 야권연대는 정치공학 중심
정책중심의 ‘가치연대’로 가야
민주-진보당-안철수 3각구도 돼야 -총선 시기 야권연대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야권연대가 정치공학적으로만 이루어졌다. 정책 중심의 ‘가치연대’가 되어야 하는데…. 아까 정파 패권주의를 지적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게 들어간다. 국회 원내교섭단체 구성하고 대통령선거 이겨 공동정부 구성하면 우리 자리가 몇 개 생긴다, 이런 것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사람을 무리하게 출마시키는 ‘알박기’도 나타났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실패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10명이었다. 분당 이후 5명이었다가 13명으로 늘어난 것을 승리라고 할 수 없다.” -총선은 끝났고 대선이 다가온다. 지난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3주기 경남추모문화제에서 “문재인, 김두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덕담인가 예언인가?(웃음) “덕담이기도 하고, 실제 바람이기도 했다.(웃음) 내가 1997년과 2002년 대선 출마할 때 ‘권영길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라는 비판과 압박을 많이 받았다.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권영길이 있음으로써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도운 셈이 되었다. 예컨대, 당시 김대중 후보는 완전히 ‘빨갱이’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권영길이 나와서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정책을 주장하면서 차별화가 된 것이다.” -진짜 ‘빨갱이’가 나왔으니 그런 건가?(폭소) “노무현 후보 때도 마찬가지로 보완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2007년 출마 시에는 대세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보았고.” -올해 대선 구도를 어떻게 보는가? “민주당, 새로 만들어질 진보정당, 안철수 개인 또는 안철수 지지세력, 이렇게 삼각구도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새누리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고 야만시대를 끝낼 수 있다. 안철수 개인 또는 안철수 지지세력의 정체성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야권세력으로 들어와야 한다. 안철수 원장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 그리고 억지로 당내에 끌어들여서도 안 된다. 절차에 있어서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후보가 먼저 단일화되어야 한다. 다음에 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이 단일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일화 과정에서 독일식 국회의원 정당명부비례대표제와 프랑스식 대선 결선투표제가 공동정책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진보정당이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전제로 해서 내각제 개헌을 주장해야 할 때가 있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야만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이 감동을 주고 흥행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감동 있는 절차를 통하여 감동 주는 후보로 선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박근혜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은 다른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두 주먹을 쥐며)우리, 이길 수 있다.” -가벼운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과거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저에게 다 같이 사직구장에 모여 ‘자이언츠’ 응원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그런데 창원에 ‘다이노스’가 생겼다. 지지 팀을 바꿀 것인가? “실제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어떻게 딱 집어냈나.(웃음) 우리는 ‘자이언츠’는 좋아해도 ‘롯데 그룹’은 안 좋아하지 않느냐. 롯데 구단, 짜다. 팬서비스도 시원찮다. 진보정치를 상징하는 노동자 도시 창원의 정치인으로 ‘다이노스’를 외면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이노스’로 바꾸기 전에 사직구장에 다 가서 “우리는 남이다”라고 한번 외치면 어떨까?(폭소) “축구는 서민 스포츠, 특히 노동자의 스포츠 아닌가. ‘다이노스’가 그런 느낌의 야구팀이 되면 좋겠다.” 정리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용산참사 다큐 ‘두개의 문’ 돌풍
■ “MB 죽이겠다” 112에 전화법원 “협박 성립안돼 무죄”
■ 수원 여성, 110시간 끔찍한 고통 겪어
■ 추적자·유령,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 빵 명장들이 전하는 동네빵집 생존법은?
연재조국의 만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