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정치사는 2012년 1월을 중요한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민주당) 대표가 ‘여야 여성대표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한나라당 전국위원회에서 비대위원장으로 뽑힌 뒤, 위기에 처한 당의 쇄신 작업을 이끌고 있다. 한명숙 대표는 15일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올라 대표가 됐다.
두 사람은 짧게는 4월 총선, 길게는 12월 대선까지 여야 대결의 최전선에서 승부를 겨루게 된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한 대표에 이어 박영선 최고위원이 자력으로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 선출된 전 민주당 지도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당시 여성은 유일하게 조배숙 의원이 지도부 경선에 출마했고, 득표율이 꼴찌였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최고위원직을 얻었다. 이번엔 경선에서 1, 3위를 여성이 차지한 마당에 굳이 여성 지명직 최고위원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에 지난달 출범한 통합진보당도 3명의 공동대표 가운데 2명(심상정·이정희)이 여성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16일 기자들을 만나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여성 수요가 정치권에서도 늘어날 조짐 아닌가”라며 “여태 한국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여성의 약진에 대해서는 이른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앞세워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박영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기독교방송>(CBS) 인터뷰에서 “여성 정치인들이 앞으로 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많이 있고, 여성 정치인이 늘수록 사회가 투명화, 공정화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한명숙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검찰 탄압 피해자’라는 이미지가 씌워져 부각된 것일 뿐,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정치적 존재감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지적도 현실적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13.7%)은 회원국 26위 수준에 그쳤다. 재정·국방 등 기존에 ‘남성적’이라 여겨진 영역에서 여성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전세계적 현상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결국 올 총선에서도 각 정당 공천은 여성에게 소정 비율 할당의 ‘혜택’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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