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27일 언론관련법 무효화 투쟁과 관련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과거의 동원방식 대신에 국민을 찾아가서 소통하는 국민소통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회 강행처리에 앞서 단식을 벌일 때 읽었다는 <백범일지>의 “평지가 아닌 벼랑끝에서 나무를 잡고 있다가 손을 놓는 게 진짜 용기”라는 구절을 옮기며, “사즉생의 각오로 싸울 때”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곧 ‘언론악법 원천무효 투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면투쟁 체제로 전환할 예정인 가운데,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 대표실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 야당 대표 단식과 의원직 사퇴 천명 등에도 불구하고 언론관련법은 강행처리됐다.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밀어붙인 것은 국민 무시이며 야당 무시다. 참으로 잊지못할 수모를 느꼈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라디오연설에서 언론관련법 처리는 “더 늦출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는데.

“입으로는 소통을 이야기하며 실제로는 국민 뜻과 동떨어진 행태를 번번이 보여왔다. 이번 사례도 그런 것이다. 이 정권의 철학과 색깔, 태도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였다.”

-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벌어진 대리투표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재투표 문제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김 의장은 당적을 형식적으로 이탈했을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철저히 한나라당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의장이 지도력을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재투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켕기는 점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처음에 자신들이 재투표에 대해 내놓은 논리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잖나. 처음에 의사국에서 한 것하고 의사과장이 한 얘기하고 달라졌다.”

- 헌법재판소 결정은 기대하나?

“그래도 헌재는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성심성의껏 법리적 투쟁을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 헌재 재판관만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헌법학자, 법조인들도 있으니까, 헌재가 쉽게 정권 하수인으로 전락하긴 어렵다고 본다.”

- 만약 헌재에서 무효가 아니라고 결정나면?

“이건 사사오입 개헌만한 내용이다. 헌법정신과 국회법에 맞지 않은 궤변을 한나라당이 늘어놓고 있다. 헌법학자들도 다수가 재투표는 인정될 수 없으며 부결이 옳다는 의견이다. 헌재가 다르게 결정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외풍에 의해 잘못된 판단을 정치적으로 하지 않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 국민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다.”

- 원외투쟁은 어떻게 펼 건가?

“옛날엔 대규모로 동원하는 동원투쟁을 했지만 이번엔 방향을 바꾸자고 했다. 우리가 국민들을 찾아가서, 거기서 국민과 소통하는 투쟁을 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소통투쟁으로 바꾸려고 생각한다.”

- 전략을 바꾸는 계기는 뭔가?

“국민들이 변했다. 국민이 동의하면 참여하는 시대가 됐다. 지난해 촛불, 이번에 6·10 행사도 그렇다. 옛날식으로 정당 조직에 의해 동원되는 시대에서 국민들이 함께 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 국회 일정은? 인사청문회도 있고, 9월 정기국회도 있는데.

“언론악법 무효화투쟁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현안과, 민주주의 수호와 서민경제 살려내기, 남북관계 개선 등의 중장기적 과제를 함께 갖고 있다. 모든 의사결정은 이런 현안과 중장기적인 과제에 맞게 선택하려 한다. 분명한 것은, 보이콧이 전부는 아니다. 장내외 병행투쟁이 핵심이다.”

-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직 일괄사퇴 뜻을 모으는 과정에서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의원직은 국민들이 선택해준 것으로 정말 신성하고 소중하다. 그런 의원직 사퇴서를 쓰면서 어떻게 의견이 분분하지 않고 논란이 없을 수 있느냐. 고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 김형오 국회의장은 정 대표를 비롯해 자신 앞으로 사퇴서를 제출한 세 의원의 뜻을 수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 의장이 가볍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제1야당 대표가 취해야할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진정성을 갖고 생각한 것인 만큼 그 행동은 존중돼야 한다. 수리해야 한다.”

- 정 대표의 경우 후속 조처를 하고 있나?

“의원 세비는 수령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고 저와 보좌진들이 해직되도록 조처를 취하고 있다.”

- 4·29 재보선 무렵 전북의 지역구를 버린 데 이어, 이번에 의원직도 내던졌다. 앞으로 정치행보는? 불편함과 불리함도 있을 텐데.

“민주당 대표가 마땅히 취해야할 태도를 취한 것이다. 민주당 대표로서 일단은 당을 세우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물론 의원직을 갖고 있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겠으나, 대표직을 수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더구나 개인적 귀책사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게 아니고 책무를 다하고자 버린 입장이라면, 오히려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야당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본다. 연연할 생각이 없다.”

-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일괄사퇴서 처리는?

“그것은 좀 신중하게 할 생각이다. 당장은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신청해놓았는데 의원직을 잃으면 당사자 자격을 잃는다.”

- 친노신당 창당 이야기도 나온다. 앞으로 범민주개혁 진영의 세력 정비와 외연 확대는?

“중요한 과제다. 7월6일 취임 1주년 때, 제2창당 수준으로 대통합을 추진하겠다면서 여러 진영과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민주진영이 합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로 노력할 것이다. 지방선거 이전에 그런 일이 매듭지어져야 할 것이다.”

글 박창식 선임기자, 이유주현 기자/사진 김봉규 기자 cspcs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