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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쫓겨난 군 출신, ‘새 진보’ 깃발로 목청껏 강행군

등록 2008-04-07 11:42수정 2008-04-07 17:00

[소수정당 비례대표 ‘3인3색’] ③ 진보신당 피우진 후보
18대 총선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소수 정당 후보들도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거대 정당 후보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알리려고 막판까지 치열한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역대 최악의 투표율이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 이들 소수정당 후보들은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처럼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소수 정당 비례대표 3인이 총선에 나선 이유와 선거운동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편집자 주>

유방암 완쾌됐는데도 암환자 낙인 찍어 강제전역
낯익어 너도나도 ‘러브콜’…쉰 목소리로 거리유세

지난 4월 3일. 진보신당 비례대표 3번 피우진 후보를 여의도 진보신당 사무실 앞에서 만났다. 날마다 이어지는 유세 탓에 목은 쉴 대로 쉬었지만, 여기저기 인사하고 다니는 모습은 영락없는 정치인이다.

오전 10시, 피 후보의 이날 첫 일정은 대체복무제 개선 간담회였다. 양심의 문제로 또는 종교적인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해 수년씩 감옥살이를 했거나 앞으로 해야 할 젊은이들과 마주 앉았다. 피 후보는 “국가가 의무를 무조건 강요할 것이 아니라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주면서 대체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8년 동안 군에 몸 담아 누구보다 투철한 군인 정신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의외였다.

“사실 창당대회 때 비례대표 3번으로 피우진 중령님이 나왔을 때, 뜨악했어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이자 진보신당 당원인 김영진(27)씨가 이렇게 말하자 화기애애하던 간담회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졌다. 진보가 군대와 군인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피우진 중령이 진보신당 비례대표 3번에 이름을 올렸을 때 당 안팎에 의아해 하는 시선이 많았다.

이에 대한 피 후보의 답은 단호하다.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를 추구하는 조직입니다. 공당이 되면 집권도 생각해야 하는데, 군을 몰라서는 안되는 거죠. (군 전문가로서) 앞으로 제가 이 당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이래서는 곤란하다”며 짬 내 병원 들러

오후 2시, 간단히 점심을 마친 피우진 후보는 “앞으로도 계속 유세를 다녀야 하는데 목소리가 이래서는 곤란하다”며 짬을 내 병원에 들렀다. 병원 안은 이미 환자들로 꽉 찼다. 기다리는 틈에 그에게 옛날 일를 물었다.

“유방암 수술을 한 것 때문에 강제 전역을 당했는데, 그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피 후보는 손사래부터 쳤다. 옛날 이야기는 그만하라는 투다. “그런 얘기를 자꾸 하니까 사람들이 제가 아직도 환자인 줄 알아요.”

그는 치료를 받고 유방암을 이겨냈다. 하루종일 유세를 다녀도 지친 기색 하나 없다. 그런데도 군에서는 ‘넌 암 환자’라고 낙인을 찍어 그를 내쳤다. 그는 1년여에 걸쳐 자신을 버린 군에 다시 돌아가려고 싸웠고, 소송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피 후보는 자신이 아팠다는 사실조차 말하기 무섭다. 괜찮다는 데도 자신을 버렸던 군처럼 국민도 이번 총선에서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후 4시, 피 후보를 태운 차량이 바쁘게 국회 주차장을 빠져나와 지원유세가 있는 동작구로 향했다. 여의도에 차 댈 곳이 마땅찮아 국회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다는데 “국회를 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피 후보는 “앞으로 내 삶의 터전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되받아 차 안에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저녁 먹으러 옮기는 중에도 명함 돌리고 인사하고…

동작구에 도착하자 진보신당 김학규 후보가 반갑게 맞아준다. 피 후보는 독특한 이력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권자들에게도 비교적 낯익은 존재다. 조금이라도 얼굴이 알려진 동료의 지원 유세를 받는 것이 절실한 진보신당의 지역구 출마자들은 너도 나도 피 후보를 찾는다.

지원유세를 마치자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쉰 목 때문에 제대로 유세를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피 후보.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는 와중에도 만나는 유권자에게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한다. 시민들의 차가운 반응과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대하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툴다. 아직은 ‘정치신인’의 티가 풀풀 난다.

“충분히 그 마음 알죠. 뭐 나도 옛날에 그랬으니까.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있잖아요.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국민들이 정치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 오후 9시, 식사 도중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증을 어떻게 극복할지 묻자 피 후보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치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노회찬 의원이 제안을 했어요. 노회찬 의원은 제 문제를 국정감사에 다뤄주셨어요.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정치인이라면 저런 자세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중에 한 분이 저에게 (비례대표) 제안한 거죠. 그래서 국회로 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밤 11시 넘어 심상정 대표 부친상 문상으로 마무리

밤 11시,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피 후보를 태운 차량은 일산에서 멈췄다.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부친상을 당해 문상을 갔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부친상을 당했지만, 심 대표의 표정은 굳건해 보였다. 4년간 의정활동에서 쌓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프로 정치인 다운 면모가 풍긴다. 아직 정치 신인에 불과하지만 피 후보가 심 대표처럼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스타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진보신당의 지지도는 1.4%정도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3번인 피우진 후보가 당선 하려면 정당투표에서 5%쯤을 얻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피 후보의 어깨가 무거워보였다.

글·영상 <한겨레> 취재·영상팀 김도성 피디 k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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