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중동’ 벗고 ‘국민속으로’
‘실사구시’ 캐치프레이즈로
제3후보 한계극복이 과제

고건 전 총리가 28일 ‘희망한국 국민연대’(희망연대)를 출범시키며 사실상의 대선 행보에 들어갔다. 그는 희망연대 출범을 계기로 그동안의 ‘정중동’ 행보에서 벗어나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민생 행보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목소리 높이는 고건=서울 시내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고 전 총리는 현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며 ‘고장난 정치’의 개혁을 역설했다. 그는 “지금의 정치권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으로 편을 갈라 권력을 차지하는 데 온 정신을 팔고 있다”며 “국민이 나서 고장난 정치를 고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바다이야기’ 파문과 관련해서도 ‘민생 실종’을 질타했다. 그는 “정부 부처와 국회, 청와대 가운데 한두 군데만 민생을 보살필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어느 부처의 정책 실패 차원을 넘어 국정 시스템의 고장이자, 현 정부의 실패”라고 주장했다.

희망연대는 ‘정치 정거장’? =고 전 총리는 이날 희망연대의 성격과 관련해 “희망연대는 정치 결사체가 아니다”라며 “희망연대를 정치활동의 장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정치를 하려면 별도의 장에서 할 것”이라며 “그 장은 바로 정치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연대가 고 전 총리의 본격적인 정치권 진입에 앞서 대선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일종의 ‘예비 정거장’이 될 것이란 얘기다. 때문에 이날 출범식에는 정치인 출신은 배제됐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출범식에는 106명의 발기인을 포함해 1천여명의 지지자들이 몰려 “고건”을 연호하는 등 열띤 분위기를 연출했다. 출범식에서는 고 전 총리와 이종훈 전 경실련 대표 등 5명이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고건이 다산을 찾은 까닭은? =고 전 총리는 이날 출범식에 앞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다산 정약용 유적지를 찾았다. 그는 다산 생가와 묘소 등을 둘러본 뒤 “정치가 이념의 미혹에 빠져 공허한 논쟁만 계속하고 있다”며 “다산의 실사구시에 입각한 새로운 정치발전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산의 ‘실사구시’를 자신의 캐치 프레이즈로 삼겠다는 점을 분명히한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출범식을 계기로 ‘민생 행보’를 본격화할 뜻도 밝혔다. 그는 “앞으로 실사구시에 입각해 각종 민생 현장을 찾을 것”이라며 “다만 무작정 현장을 찾기보다는 정책 이슈에 따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다음달 초순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촌 현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현장 등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험난한 제3후보의 길 =고 전 총리가 이날 대선 행보를 본격화할 ‘둥지’를 마련했지만, 남은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정치권 밖의 ‘제3후보’로서의 한계를 극복할 수있느냐가 그의 최대 과제다. 역대 대선에서 자신의 정치기반을 가지지 못한 ‘제3후보’가 성공한 예는 아직 없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지난해 말부터 정파를 초월해 실용주의적인 중도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연대·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며 “앞으로 교감을 넓히는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정파를 초월한 ‘중도노선’이 국민들 속에서 얼마나 공감대를 확산할지, 그리고 정치권 안에서 입지를 확보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백기철 기자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