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청년 정치인 모임인 ‘정치개혁 2050' 회원들이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을 12일 앞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정치·정당 개혁을 정치인의 손에 맡길 수 없다면서 시민의 뜻에 따라 다양성이 보장되는 선거법 처리를 국회에 요구하는 ‘정치개혁·정당개혁 1000인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개혁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싣고 30일 이륙하는 국회 전원위원회엔 맞물려 돌아가는 두 톱니바퀴가 있다. 바로, 민의를 최대한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 도출이라는 당위와 253명에 이르는 지역구 현역 의원들의 생존 불안 달래기라는 현실이다. 이를 반영해 국민의힘은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더불어민주당은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와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원위원회에 올렸다. 여야는 우여곡절 끝에 이 세가지 선거제 개편안(‘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 결의안’)을 앞으로 2주 동안 논의해 ‘단일한 합의안’을 만들기로 했지만, 어느 쪽으로 가닥이 잡히냐에 따라 각 당의 이해득실이 크게 갈리는 탓에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여야는 전원위를 시작도 하기 전에 국회의원 증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이유로 ‘현행 300명 유지’를 선언해, 선거제 개편의 여지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논의 전망과 보완할 점 등을 4차례에 걸쳐 짚는다.
민주당 안 가운데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 제도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비례 의석(ㄱ)을 배분하되, 지역구 당선자 수(ㄴ)를 제외한 의석수(ㄱ-ㄴ)의 절반만 반영한다. 국회는 소수 정당들도 얻은 표심만큼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21대 총선 때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으로 그 취지가 완전히 실종됐다. 또한 비례대표 의석수 자체가 47석으로 제한적인데다, 그나마도 준연동형을 적용한 의석은 30석에 불과했다. 나머지 17석은 기존의 병립형(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것)을 적용해, 제도 설계부터 개혁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민주당이 다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것은, 선거제 개혁의 핵심인 비례성을 확대하려면 제한된 비례 의석수를 정당지지율에 따라서만 나누는 ‘병립형 제도’로 회귀할 순 없다고 봐서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진짜 비례성을 높이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는 게 맞지만, 의원 정수 확대 없인 현실적 한계가 크다”며 “우리가 지난 총선에 위성정당을 만들어 개혁에 실패했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유지하고 위성정당 창당을 막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는 국민의힘이 주력하는 방안이다. 농촌 지역에선 지금처럼 한 선거구에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도시에선 인접 선거구를 하나로 묶어 3~5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하자는 것이다. 중대선거구는 소선거구보다 지역 기반이 크기 때문에, 지지도가 취약한 정당도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낼 수 있다는 게 이 제도를 꺼내 든 논거다.
실제로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중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시뮬레이션 분석’을 보면, 서울·부산 등 대도시에 2~4인 중선거구를 도입하면 거대 양당의 과다대표 현상이 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당 체제로 갈라진 20대 총선 당시 각 당의 지역구 성적표는 △민주당 110석 △새누리당 105석 △국민의당 25석 △정의당 2석이었다. 하지만 도농복합 중선거구제를 적용해 모의실험을 해보니 △새누리당 90석(-15) △민주당 86석(-24) △국민의당 37석(+12) △정의당 2석으로 상황이 역전됐다. 당시 서울·인천 등 수도권에서 선전했으나 석패한 국민의당 후보들이 중선거구제에선 여럿 당선되는 걸로 나타나며 판세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4인 미만 중선거구제를 현실에서 적용할 땐 ‘도로 양당 정치’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기초의원 선거에 3~5인 중선거구제를 도입했지만, 시범지역 30곳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거대 양당 소속이 105명(더불어민주당 55명, 국민의힘 50명)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선거구당 4명 이하를 뽑는 중선거구제는 ‘양당 나눠먹기’ 구도를 만드는 만큼 차라리 모든 선거구를 광역화해 한 선거구에서 4~7명, 많게는 12명까지 뽑자고 주장한다.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가 바로 이런 내용이다. 그러나 대선거구제도 기존 정당과 유명인사가 더 유리하다는 중선거구제의 문제점은 고스란히 안고 있다. 후순위로 갈수록 득표율 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표의 등가성이 훼손된다는 한계도 갖고 있다.
민주당이 대선거구제의 조합으로 검토 중인 ‘개방형 명부’는 유권자가 정당과 후보자 양쪽을 모두 선택할 수 있도록, 투표용지에 모든 정당과 모든 후보를 표기한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해당 지역구의 의석수를 정당별로 나눈 뒤, 후보의 득표순으로 당선자를 정한다. ‘권역별 비례제’와 유사한 제도인데, “취지는 좋지만 현실화엔 어려움이 큰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현재도 정당명부에 20개 가까이 이름을 올리는데, 각 당이 후보 이름까지 모두 명기하면 투표용지 하나가 대자보 크기가 돼야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수동개표를 할 수밖에 없는데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역별 비례제’는 전원위에 오른 여야의 개선안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선거 단위를 △서울 △인천·경기·강원 △대전·충청 △광주·전라·제주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등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누고, 비례 의석수는 해당 권역별 인구수나 지역구 의원 수에 비례해 배분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이와 같은 6개 권역 또는 현재의 광역단체 단위인 17개 권역으로 나눠 비례대표를 선출하자는 의견이다.
다만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실시하는 게 비례성을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회의적이다. 이미 지역구 국회의원이 있는 상황에서 지역 대표성을 가진 비례대표를 확대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지난 1월19일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민주주의연구소)는 “지역대표성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는 건 오히려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하는 문제”라며 “비례대표제는 직능대표성이나 사회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서 권역별로 선출하면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열쇳말
△소선거구제
하나의 선거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1명을 의원으로 선출하는 현행 제도.
△중대선거구제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제도.
△병립형 비례대표제
지역구(253석)는 지역구대로 뽑고, 비례대표 의석(47석)만 정당득표율대로 나눈다. 20대 국회까지 적용.
△연동형 비례대표제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당 의석수를 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가 그에 못 미칠 때 그만큼을 비례대표로 채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21대 국회에 적용.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비례의석을 배분하되, 지역구 당선자 수를 제외한 의석수의 50%만 반영한다. 가령 ㄱ당의 정당득표율이 10%, 지역구 당선자가 20명이라면 배분되는 비례의석은 5석이 된다. 총 의석수(300석)의 10%인 30석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 20석을 뺀 나머지의 절반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전국을 몇개의 권역으로 나눠 인구 비례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를 배정한 뒤, 그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 비례대표는 지역구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로 채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