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서해수호 55용사 이름을 부르기 전에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두고 여론을 보며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온 만큼 이르면 다음달 4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6일,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에 관해 “농민분들이 여러 입장을 표명하고 계신다. 농민단체의 입장을 자세히 들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야당의 입법 폭주를 부각하면서 여론을 살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이 정부로 넘어오면 15일 안에 공포하거나, 이의가 있으면 이의서를 첨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법안을 국회가 다시 통과시키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4일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때 “무제한 수매라고 하는 양곡관리법은 결국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양곡법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모두 매입하도록 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3일 양곡관리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장관으로서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는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에서는 여론을 설득한 뒤 이르면 다음달 4일께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로선 4월4일 국무회의 안건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과 방송법 개정안과 직회부를 예고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등이 줄줄이 있는 상황에서 그때마다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는 고민거리다. 윤 대통령이 양곡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취임 뒤 처음이자,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 약 7년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5월 국회 상임위에서 상시 청문회 개최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된 법안은 재의를 검토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입법 폭력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쉽게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원내대표단 관계자는 “정치적 쟁점이 부각된 법안과 달리 양곡관리법은 농민들의 민심과 직결돼 있어 여론의 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여론전을 통해 거부권 행사의 부당함을 알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