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뒤 제1야당 대표에 올랐지만, 대선 때부터 예견됐던 ‘사법 리스크’가 가시화며 위기를 맞은 모양새다.
이 대표의 최근 행보는 ‘민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4일 한국계 미 하원의원들에게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한 인플레이션 방지법(IRA) 관련 서한을 보낸 사실을 공개하며 ‘민생 우선’ 메시지를 부각했다. 그는 측근인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구속 직후인 지난달 19일에도 “민생을 지키는 야당 역할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당 관계자는 “검찰이 칼춤을 추더라도 제1당 대표라는 자리의 엄중함을 잊지 않고 민생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생 메시지는 사법 리스크에 막히는 형국이다. 계파색이 옅은 한 의원은 “민생을 아무리 외쳐봤자 다음날이면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에 모두 묻히는 상황”이라며 “이 대표가 적어도 측근 구속에 유감 표명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처지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생략할 만큼 녹록지 않다. 이 대표 쪽은 기자회견을 열어도 질문이 대장동 의혹 등 검찰 수사로 몰려 ‘민생 행보’가 무색해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기자회견 없이 5∼7일 사이에 취임 100일을 맞은 에스엔에스(SNS) 메시지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불안정한 모습이다. 지난 8월28일 77.77%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검찰의 당사와 대표 비서실 압수수색 등으로 기반이 약해졌다. 당 안에서는 ‘대장동 수사’가 당 전체를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조용히’ 들끓는 분위기다. 비이재명계 중진인 설훈 의원은 지난달 2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떳떳하기 때문에 혼자 싸워 돌아오겠다’고 선언하고 당대표를 내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율도 이 대표의 지도력에 물음표를 단다. 한국갤럽이 공개한 12월 첫째 주(11월29일∼12월1일) 민주당 지지율은 33%로, 국민의힘 지지도(35%)와 어금버금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정부의 잇따른 실정으로 인한 낮은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을 감안하면 초라한 수치다.
이 대표의 입지는 검찰 수사 향방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구속 등 ‘윤석열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에 따른 위기감 탓에 당내 ‘단일대오’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이 대표 소환 조사 등 수사 강도를 높이면 잠재한 당내 갈등이 분출하며 지도력이 휘청일 수 있다.
이 대표는 ‘정면돌파’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이재명계 의원은 “검찰 수사가 거셀수록 윤석열 정부에 맞서는 이 대표의 존재감이 뚜렷해질 수 있다. 이 대표 앞길에는 ‘정면돌파’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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