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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민주, 사과없는 대통령에 침묵시위…윤, 그냥 지나쳐

등록 2022-10-25 17:37수정 2022-10-26 02:43

25일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 뒤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5일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 뒤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침묵하겠습니다. 침묵하겠습니다!”

25일 오전 9시40분께, 경호인력에 둘러싸인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청 중앙홀에 나타나자 장내에 일시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바로 전까지 중앙 계단에 줄지어 서서 “국회무시 사과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던 더불어민주당 의원 160여명이 윤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호 대신 ‘국회무시 사과하라’, ‘이 ×× 사과하라’, ‘야당탄압 중단하라’라는 손팻말을 든 채 자신들 앞을 지나치는 윤 대통령을 침묵 속에 지켜봤다. 무언의 항의를 상징하는 검은색 마스크를 나눠 쓴 야당 의원들의 대열 맨 앞줄에는 굳은 표정을 한 이재명 대표가 서 있었다. 윤 대통령은 이들 앞을 지나쳐 10여초 만에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88년 시정연설이 도입된 뒤 제1야당의 헌정사상 첫 ‘대통령 시정연설 거부’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민주당은 오전 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 앞서 의원총회를 열고 본회의 불참과 중앙홀 침묵시위를 결의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 수사와 중앙당사 압수수색, 지난달 미국 순방길에서 불거진 ‘비속어 파문’에 윤 대통령이 어떤 유감이나 사과도 표시하지 않았다며 윤 대통령 연설을 듣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장에 들어가 항의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거친 항의나 소란이 불거지면 여권에 비판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고려 끝에 회의장 밖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오전 10시께부터 시작한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169명의 민주당 의원 전원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반쪽짜리’로 진행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을 들어서자 일어나 박수를 치며 맞이했다. 일부는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하거나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이들은 시정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19차례에 걸쳐 박수로 호응했다.

본회의장에 앉은 정의당 의원들은 연단에 선 윤 대통령이 보도록 ‘이 ×× 사과하라’, ‘부자감세 철회, 민생예산 확충’ 등의 손팻말을 앞에 내걸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정의당 웬만큼 해라”라고 항의하고, 이에 정의당 의원들이 “이 정도인 게 고마운 줄 알라”고 되받아 말다툼이 오가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던 시각, 본회의장 맞은편 예결위원회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정국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한편,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시정연설 전 열린 윤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등과의 사전 차담회에도 불참했다. 이 자리에서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대통령에게 ‘비속어 파문 때문에 정쟁이 계속되고 민생이 미뤄지고 있다. 국회와 국민을 모독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내가 하지 않은 발언을 사과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사과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대위원장은 또 윤 대통령에게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과 관련해 “아직 국회에서 입법 논의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대통령 거부권 이야기가 나오는 데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거부권 이야기를 한번도 한 적이 없다”며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달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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