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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광주의 분노…“민주당, 이제 민생을 두고 큰 싸움 하라”

등록 2022-09-02 06:00수정 2022-09-02 17:54

싸늘한 호남 민심 ‘이재명호’에 주문

도시 전체 휘감은 정치적 무력감
대선 투표율 1위, 지방선거는 꼴찌

발전 없는 호남 정치에 염증도
“민주당이 광주에 진짜 신경 썼다면
복합쇼핑몰 한마디에 휘청했겠나”

윤 정부 실정, 민주당엔 기회로
“이재명 대표 살아날 계기 만들어져
정부 발목잡기 말고 제대로 싸워라”
8월31일 광주광역시 동구의 번화가 충장로 상가 한 블록이 모두 공실로 비어있다. 임재우 기자
8월31일 광주광역시 동구의 번화가 충장로 상가 한 블록이 모두 공실로 비어있다. 임재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에는 시내가 조용해부렀죠. 인자 티브이도 안 보고, 정치라면 신물이 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에서 장을 보던 김순이(75)씨는 ‘민주당 대선 패배’ 직후의 분위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또 다른 시민 홍아무개(55)씨도 “아무리 호남이 결집한다고 해도 인구 비례에 따라 이길 수 없다는 게 드러난 것”이라며 “지방선거에서는 ‘이럴 거면 투표해서 뭣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한겨레>가 광주에서 만난 시민 10여명 중 대부분은 대선 패배 뒤 한동안 정치 뉴스를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광주가 84.82%라는 ‘몰표’를 몰아줬음에도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자 ‘정치적 무력감’이 도시를 삼켰다는 것이다.

광주의 실망감은 극단적인 투표율 변화로 이어졌다. 일종의 ‘정치적 보이콧’이었다. 올해 3월 대선에서 전국 1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높은 81.5%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광주는, 6월 지방선거에서는 37.7%(전국 평균 50.9%)의 전국 최저 투표율로 뒤집혔다. 민주당 8·28 전당대회의 권리당원 투표율 역시 34.18%로, 전국 평균(37.09%)에 미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8월31일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의 한산한 모습. 임재우 기자
8월31일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시장의 한산한 모습. 임재우 기자

“때 되면 ‘광주정신’ 이야기하지만 변한 건 없어”

광주의 집단적 ‘투표 거부’는 대선 후유증 탓만은 아니었다. 광주시민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의 발전 없는 호남 정치’에 대한 분노가 이미 깊었다. 양동시장에서 의류도매업을 하는 손중호(71)씨는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시절은 이미 넘어서야 하는데, 선거철만 되면 깃발이 ‘당장 내리는 비 가리는 우산’이 된다”며 “(호남 지역)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지자체장도 마찬가지로 각성해야 한다. 마음 같아선 싸그리 바꿔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직장인 ㄱ(31)씨도 “때가 되면 ‘광주정신’ 이야기하고 망월동을 참배하지만 광주는 실질적으로 뭐 하나 바뀌는 게 없다”며 “민주당이 진짜 이곳에 신경 썼다면 광주가 대선 때 ‘복합쇼핑몰’ 한마디에 휘청했겠나”라고 말했다.

중앙정치에서도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소통령’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이 주고받는 논박은 그 자체로 민주당의 ‘실력’을 가늠하는 ‘검투사 대결’로 인식되고 있었다. 택시기사 최아무개(45)씨는 “국회의원 말에 한마디를 안 지는 한동훈 장관도 얄밉지만, 169석 거대야당이 장관 한 사람을 제대로 대적하지 못하는 걸 보고 내 얼굴이 빨개졌다”며 “차분하게 실력으로 눌러줘야지 버럭대기만 하면 한동훈만 키워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광주 청년들은 부모세대와 달리 민주당과의 ‘정서적 유대감’이 강하지 않았다. 조선대 2학년생인 신효승(19)씨는 “어른들은 항상 ‘국민의힘이 어떤 일을 한 정당인지 역사를 몰라서 그런다’고 하시지만, 요즘 청년들은 과거에 있었던 일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당인지를 보고 투표한다”며 “민주당이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은 적어도 제 또래에서는 옅어졌다”고 말했다. 신씨는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27년만에 국민의힘 소속 광주광역시의원이 탄생한 것에 “긍정적인 충격”을 받았다며 “좋아하는 정당도 지지하는 정당도 아니지만 좋은 일이라고 봤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데 국민의힘 당선자도 나와야 민주당도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8월31일 광주 동구 금남로 지하상가. 임재우 기자
8월31일 광주 동구 금남로 지하상가. 임재우 기자

“싸우는 건 좋지만…민생 두고 큰 싸움 해주길”

광주의 허무감은 깊었지만, 윤석열 정부의 불안한 국정운영은 분명 민주당에 기회가 되고 있었다. 직전 대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이재명 대표는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였다.

37년을 충장로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한 정일성(67)씨는 “차마 뽑지는 않았지만 잘하기를 바랐던”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이준석을 몰아내려는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봤다. 정씨는 “민주당원들이 이재명 대표를 압도적으로 밀어준 것은, 앞으로 압도적으로 잘하라는 뜻”이라며 “(광주시민들이) 지금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어떻게 할지 찬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양동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는 조성주(54)씨도 “뭐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나 싶은데, 민주당은 제대로 지적도 못 하고 만날 내분만 일으키지 않았나”라며 “이재명 대표는 뭐라도 해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기들끼리 그만 싸우고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제대로 맞붙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광주와 이재명 대표의 관계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형성했던 감정적 결합과는 성질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광주시당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는 광주시민들한테 경기지사 할 때 몇번 방문한 것 빼고는 사실은 낯선 사람”이라며 “지방선거 패배 직후만 하더라도 (이재명) 비토 정서가 없지 않았는데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불안해지면서 이재명 대표가 살아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선 때는 민주당 후보여서 지지했다면, 지금 국면에서는 ‘이재명 아니면 윤석열 정부를 견제할 사람이 없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여당을 향한 견제가 막무가내식 발목잡기가 아닌 ‘미래지향적’ 비판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직장인 김아무개(37)씨는 “야당이니까 싸우는 건 좋다. 그런데 싸움판을 잘 골라야 한다”며 “검사들하고 다투는 작은 싸움 말고, 이제부터는 민생을 두고 큰 싸움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를 “정신적 스승이자 사회적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재명 대표는 대표 취임 뒤 첫 지역일정으로 1일 광주를 방문해 타운홀 미팅을 한 데 이어 2일에는 최고위원 회의를 연다. 오승용 킹핀정책리서치 대표는 “광주를 비롯한 호남에는 호남 정치인들의 무능에 대한 강력한 염증이 있다”며 “이재명 대표가 지도부 구성에 지역 안배를 고려하겠다고 밝힌 만큼, 지명직 최고위원에 얼마나 새로운 비전을 상징하는 인물을 고르느냐가 호남 민심을 회복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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