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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여도 야도 비대위…“청년 정치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이 만들었다

등록 2022-08-21 11:42수정 2022-08-24 11:48

[한겨레21]
국힘·민주·정의당 비대위, 시급한 민생 의제 논의는 미루고…
“청년 정치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만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셋째) 등이 2022년 8월18일 국민에게 사죄의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셋째) 등이 2022년 8월18일 국민에게 사죄의 인사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양의 머리를 놓고 개고기를 판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비판하며 여러 차례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양두구육은 겉으론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속이 변변하지 못해 내실이 없을 때 쓰이는 말이다.

이 문구는 요즘 제21대 국회의 모습을 설명할 때도 쓰일 법하다. 2022년 5월30일 후반기 국회가 시작됐지만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여야가 갈등을 빚어 무려 53일 동안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됐다. 현재 9월 정기국회 회기가 2주 남짓 남았지만,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국회 의석수의 97%를 차지하는 3개 정당 모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당내 갈등을 수습하느라 바쁘다. 각 당이 ‘누가 당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냐’에 몰두하는 동안 시급한 민생 의제에 대한 논의는 기약 없이 밀리고 있다. 여의도에 권력 쟁투는 남았지만, 정치는 사라졌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22년 8월17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언 중이다. 공동취재사진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22년 8월17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언 중이다. 공동취재사진

 

여의도는 ‘양두구육’

여야가 국회 후반기 원구성에 합의한 시점은 7월22일이다. 같은 달 25일~27일 대정부 질문을 시작으로 후반기 국회가 본격 시작됐다. 진통을 겪었던 상임위원장 배분은 국민의힘이 행정안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7개, 더불어민주당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맡기로 결정됐다. 민생경제안정·형사사법체계개혁·정치개혁·연금개혁 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이후 국회를 통과한 민생 관련 안건은 단 두 건뿐이다. 국회는 8월2일 본회의를 열어 유류세 인하 범위를 기존 30%에서 50%로 확대하고 직장인 식대 비과세 한도를 2023년 1월부터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리는 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민생 대신에 각 당이 골몰한 건 당내 주도권 싸움이다. 국민의힘에선 8월17일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성접대 의혹 무마 등의 이유로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고 이준석과 ‘윤핵관’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데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비대위 전환’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주호영 비대위원장은 8월18일 열린 첫 비대위 회의에서 “당의 갈등과 분열이 생긴 뒤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법정까지 가게 된 일 등을 모든 국민과 당원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집권당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이 시대의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조금씩 역지사지하고 양보하면 당의 단합은 조기에 정착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주 위원장의 바람은 쉬이 이뤄지긴 어려워 보인다. 이준석 전 대표가 당 바깥에서 ‘비대위 체제’와 ‘윤핵관’ 때리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당의 비대위 전환 효력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데 이어 8월16일 당을 상대로 ‘최고위원회, 상임전국위원회, 전국위원회 의결 등에 관한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을 향한 날도 계속 벼리고 있다. 이 전 대표는 8월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핵관’의 실명을 거론하는 한편, “이 ××, 저 ××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며 윤 대통령을 공개 비판했다. 8월18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윤 대통령을 가리켜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했다.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6월10일 출범한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비대위’는 ‘당헌 제80조 개정’을 둘러싼 갈등을 일단 봉합한 상태다. 비대위는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는 기소와 동시에 직무를 정지할 수 있다’는 당헌 제80조 1항을 그대로 두는 대신, ‘정치탄압 등이 인정되는 경우 중앙당 윤리심판원이 징계를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고 명시한 제80조 3항의 주체를 윤리심판원에서 당무위원회로 바꾼 개정안을 8월17일 의결했다. 현재 검경에서 수사 중인 이재명 의원 관련 사건은 10여 가지에 이른다. 이 의원을 보호하는 ‘방탄’용 개정이란 비판과 ‘비명계’ 의원의 반발이 이어지자 비대위가 중재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당무위원회가 당 지도부와 시도당위원장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만큼, 사실상 징계 재심의 여부를 ‘셀프 심사’ 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대위의 중재안을 두고 장경태, 박찬대 의원 등 ‘친명계’ 의원들은 “당원의 요구를 무시하는 행태”라며 반발했다. 8월2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권리당원 득표율과 여론조사에서 각각 70%대, 80%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은 굳어진 분위기지만, 친명-비명계 갈등은 여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다.

역시 선거 참패 이후 6월20일 ‘이은주 비대위’ 체제를 발족한 정의당의 경우, 상황이 더욱 녹록지 않다. 정의당은 8월31일부터 9월4일까지 비례대표 의원 5명(강은미·류호정·배진교·이은주·장혜영)의 사퇴 권고 여부를 두고 당원 총투표를 실시한다. 앞서 8월7일 정호진 전 대변인이 당원 1002명의 서명(유효서명 937명)을 받아 ‘당원 총투표를 발의한다’는 서명부를 당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당원 총투표에서 당권자의 20% 이상이 투표하고, 투표자의 과반수가 동의하면 비례대표 의원 사퇴 권고는 확정된다. 의원들이 이 권고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구속력은 없지만, 당원 총투표 결과를 거부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정의당 관계자는 “(사퇴 권고를)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사퇴 찬성파’처럼 총대를 메는 사람이 없다. 만약 사퇴 권고가 결정됐는데 (비례의원이) 거절한다면 사실상 당이 끝장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22년 8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2022년 8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인물·계파 중심 정치의 한계”

어쩌다 세 당 모두 불안정한 ‘비대위’ 체제가 됐을까. 표면적으로는 선거 참패나 지지율 하락이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기저엔 “인물, 계파 중심 정치의 한계이자 유동성이 큰 한국 정당정치의 특성”(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 존재한다. 이준한 교수는 “당에 한 후보가 있으면 그쪽에 쏠렸다가 (해당 인물이) 실패하면 책임을 물으면서 당이 와르르 무너진다”며 “정책과 공약이 당 이념이나 가치 중심으로 가면 후보가 선거에서 져도 정당이 탄탄하게 유지될 텐데 인물 중심 정치의 한계”라고 짚었다.

각 당의 비대위 전환 과정에서 “청년 정치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이 일어났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는 해석도 있다. 거대 양당의 비대위 출범은 이준석 전 대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의 힘을 빼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지방선거 참패 원인으로 당이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에만 집중한 점을 짚고, “노동의제 사라진 페미니즘 중단하라”며 비례대표 총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왔다. 이는 청년 비례대표인 류호정·장혜영 의원을 정조준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다만 이번 당원 총투표를 발의한 정호진 전 대변인은 “정의당이 지금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리빌딩‘을 하기 위해 비례 의원 5명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투표”라고 말했다.

엄경영 소장은 “최근 2~3년 동안 청년 정치인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나름 혁신이나 비전 경쟁을 하게 한 점도 있는데 선거 이후 정치가 퇴행하는 과정에서 세 당 모두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며 “일종의 반동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대위 체제가 혁신과 개혁보다는 “특정 세력의 당권 장악을 위한 방편으로 세 당에서 모두 활용”(엄경영 소장)되는 동안 정책 조정과 입법이란 국회 본연의 기능은 희미해졌다. 뒤늦게 개원한 탓에, 8월 초까지 상임위별로 겨우 부처 업무보고가 진행됐다. 기획재정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간 힘겨루기로 인해 소위 구성조차 완료되지 않았다.

국회가 제구실을 못하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당장 2022년 종합부동산세 특례 적용 대상자는 8월20일까지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뒤늦게 자진신고나 이의신청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앞서 김창기 국세청장은 8월1일 기재위 업무보고에서 “종부세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8월20일까지는 국회에서 처리돼야 원활하게 집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부처가 학제 개편안과 초등 전일제 교육 등 굵직한 사안을 일단 ‘던져보고’ 여론이 안 좋으면 취소하는 식의 실책을 거듭하는 동안 국회가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형중 정책연구자는 “교육부의 국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튀어나온 초등 전일제 교육은 양육, 돌봄, 경력단절 문제와도 직결되는 동시에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으로, 일단 이슈가 제기되면 국회가 정책 논의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당은 어젠다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뜨거워진 뒤에야 뒤따라가는 시늉을 한다”고 말했다.

개원 때만 쏟아지는 ‘일하는 국회’ 다짐

제21대 국회 개원 당시 180석을 차지했던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상시국회 운영 △법사위 개선 △원구성 절차 제도화 등을 담은 ‘일하는 국회법’(국회법 개정안)을 의원 177명의 이름으로 공동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2020년 12월 국회 운영위원회 운영개선소위에서 논의된 뒤, 단 한 번도 논의 테이블에 오른 적이 없다.

“시대의 변화, 삶의 변화, 산업·경제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회의 결정 속도가 빨라져야 합니다.”(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20년 7월20일 교섭단체대표 연설)

“국회의 존재 이유는 행정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국회가 대통령 권력을 추종하는 것을 넘어 옹호하기에 급급한 실정입니다.”(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2020년 7월21일 교섭단체대표 연설)

국회 개원 직후 쏟아져 나온 발언과 다짐의 무게를 과연 299명의 의원은 후반기 국회에서 깨달을 수 있을까. 새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진행될 정기국회는 9월1일 시작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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