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선출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에서 지명 감사 인사말씀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 도전을 선언한 지 130일째, 27년차 전직 검사는 제1야당 대선 후보가 됐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환멸은 ‘정치 신인’ 윤석열을 정치 무대로 끌어올렸고, 정권 교체를 희망하던 정통 보수 지지층은 ‘윤석열 대세론’을 형성했다.
윤석열 후보는 당심의 든든한 지지(당원투표 57.77%, 여론조사 37.94%)를 얻으며 5일 국민의힘 대선 주자로 확정됐지만 그를 바라보는 보수 유권자들의 시선엔 기대와 우려가 겹쳐진다. 경선 과정 중 불거진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등 본인과 가족 리스크, 2030 세대와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은 본선 승부를 위해 윤 전 총장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높은 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에서 대선후보로 수직 이동…“과거 정부와 다른 새로움 제시 못 해”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29일, 검찰총장에서 내려온 지 118일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 참여를 선언했다. 한 달여 정치권 인사들을 두루 만나다 7월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한 달 뒤 시작된 대선 경선에서 그는 초반부터 당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원톱’ 후보로 부상했다. 당내에 뚜렷한 주류가 없는 상황에서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정권 교체의 ‘상징’이 됐다. 당내 의원 다수가 그의 뒤를 받쳐주며 ‘대세론’을 형성했다.
현 정부와 각을 세우며 ‘공정’ ‘정의’ 열쇳말을 앞세우고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인이 된 뒤에는 뚜렷한 철학이나 비전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 이력을 제외하고 전문성을 보이지 못한 데다, 기존 정치인과 다른 ‘새 정치’의 모습도 내놓지 못하면서 대선 후보로서 자질을 의심받았다. 특히 그는 ‘주 120시간 노동’ ‘부정식품 먹을 자유’ ‘집이 없어 청약통장을 만들지 못했다’ 등 정책 이해도가 낮은 실언을 연달아 쏟아내면서 수차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선 마지막쯤엔 ‘무속 논란’과 ‘전두환 옹호’ 발언, ‘개 사과 사진 게시’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윤 전 총장 캠프 관계자는 “습득 능력이 굉장히 빠르다”며 “본격적인 본선 국면에서 검사 시절 ‘윤석열다운’ 강인한 리더십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시사평론가인 유창선 박사는 <한겨레>에 “윤 전 총장은 지금까지 사실상 구정치 쪽에 편입되는 모습으로 비쳤다. 캠프에 과거 엠비(MB)·박근혜 시절 인물들이 대거 포진해 새로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며 “어떻게 하면 새로운 정치를 보일 인물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 ‘과거 보수당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윤석열 정부만의 가능성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본인·측근 수사 리스크는 어떻게?…2030·중도층 ‘외연확장’ 가능할까?
윤 전 총장은 재직 시절 검찰이 여권 정치인의 고발을 사주했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시민단체로부터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을 부실수사했다며 고발당하기도 했다. 부인인 김건희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코바나컨텐츠 협찬금 수수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고,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 재검증을 앞두고 있다. 윤 전 총장 장모인 최아무개씨는 수십억원대 요양급여 부정수급으로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을 선고받는 등 ‘처가 리스크’가 쏟아져나오는 형국이다. 본선 무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윤 전 총장은 언론과 상대 후보 쪽으로부터 고강도 검증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 스스로는 “제가 흠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정권에서) 벌써 구속했을 것”(지난 1일, 경기도당 간담회)이라며 의혹을 불식시키려 했지만, 본인과 가족 관련 수사 진행 방향에 따라 대선 국면에서 야당에 대형 악재가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 경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은 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와 ‘원팀’을 꾸려가야 하는 과제도 그에게 남아있다. 경선 막바지, 당원투표 직전인 익명으로 공개된 ‘공천 협박’ 논란 등과 관련 윤 전 총장 캠프는 홍 의원 캠프 대변인을 고소하면서 양쪽은 법적 공방을 앞두고 있다. 유 전 의원 또한 윤 전 총장의 무속 논란을 티브이(TV) 토론회에서 강하게 물고 늘어지다 후보 간 마찰을 겪은 바 있다. 이날 결과 발표 뒤 낙선 후보들이 모두 “정권 교체를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내 주류 세력이 없기 때문에 후보 중심으로 원팀 선대위를 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캠프 소통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경선 과정에선 캠프 내 정제 작용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이번 경선 결과에서 확인된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극복해야 하는 점도 윤 후보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남았다. 윤 후보는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민심을 반영하는 국민여론조사에선 홍 의원에게 10%포인트 넘는 차이로 뒤쳐졌다. 캐스팅보트인 2030 세대의 지지와 중도층 민심을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는 ‘본선 승리’를 윤 후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윤 후보는 오는 10일부터 1박2일로 광주를 방문하고, 11일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진보·중도층 표심 공략을 위한 행보인 셈이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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