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전 정의당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영등포 캠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정미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후보다. ‘정권교체냐, 정권재창출이냐’에 몰두하느라 대한민국의 새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후보들과 한자리에 앉아 경쟁력을 겨뤄보겠다.”
지난달 23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이정미 전 정의당 의원을 3일 서울 영등포 캠프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만났다. 이 전 의원은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각각 ‘민주당 기득권에 포획된 비주류’, ‘정권교체를 위해 고용된 하청업체’에 비유하며 이들과 대선에서 맞붙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전 의원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돌봄’으로 규정하며 각 지역에 ‘종합돌봄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은 시혜적이지만 자신의 ‘참여소득’은 노동자에게 정체성과 자부심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제 폐지와 의원내각제 도입을 약속했고,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1966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정미 후보는 2003년 민주노동당 당직자 생활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20대 총선 당시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왔다. 2017년부터 2년 동안 정의당 대표로서 당을 이끌었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인천 연수구 을에 도전했지만 3위(18.3%)로 낙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출마 선언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 페미니스트 대통령로서의 1,2,3호 공약은 무엇인가?
“페미니스트 정치를 실현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일단, 다양한 정체성들이 이 사회 안에서 인정받고,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생활동반자법’을 반드시 실현하겠다. 이른바 ‘정상 가족’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가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경제적 분배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인 (남녀 간) ‘임금 격차’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남녀 간 임금 격차는) 거의 40% 차이가 난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경력단절이다. 여성의 아이 돌봄 시기를 ‘경력단절’이이 아니라, 하나의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그런 시스템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남성 육아휴직의무제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제도와 함께 궁극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녀 동수 내각을 실현해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 비례대표 수준에서는 여성 할당이 50%로 의무화돼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사회의 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 안에서는 여성의 목소리 아주 적게 대표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이대남, 이대녀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젊은 층 젠더 간 갈등이 심한 상황이다. 페미니즘에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사회구성원을 설득할 복안이 있나.
“일단 (‘이대남’이라 여겨지는) 그분들 머릿속에 심겨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잘못 정의돼 있는 걸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인간은 모두 존엄합니까? 인간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할 권리가 있습니까? 공동체 안 모든 시민은 연대해야 합니까?’ 이 질문을 드리고 싶다. 그러면 모두 ‘그렇다’고 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평등, 모두를 위한 연대, 이것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남성들은) ‘내 옆에 여성들이 내 것을 앗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할 텐데, 당신 옆에 있는 여성 동료 때문이 아니라 세습 자본주의, 불평등이 만들고 은폐한 차별의 장막을 거두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겠다.”
―출마 선언에서 대통령제 폐지, 의원내각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의원내각제를 통해 이루고 싶은 정치의 모습은 어떻고 이때 정의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아무리 높은 지지율을 가져도 상대 정치세력은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 다음 권력을 갖기 위해서다. 소위 권력독점체제 아래서는 새로운 10년의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5년을 보내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 불평등, 기후위기 등 엄청난 재앙과 갈등의 도가니로 말려들 거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다음 총선 때 곧바로 총투표를 부쳐서 대통령제 폐지하고 의원내각제로 갈 수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 의회가 대통령의 오더를 받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대변해서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그런 구조로 나가는 게 필요하다. 국민을 제대로 대의하는 국회로 가야 한다. 의원내각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다당제, 촘촘한 민주주의를 위한 완전한 지방분권이 함께 굴러갈 수 있도록 정치권력 체제의 전환이 필요하다. 협치의 틀 안에서 그동안 이전 권력은 주로 기업, 시장, 성장 등 가치를 먼저 여겨왔지만 정의당은 그렇지 않은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6개 의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정의당은 선명성을 강화해야 할까, 확장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대한민국 양당 독점에 대해서 상당히 문제 의식을 가진 유권자층이 분명히 존재한다. 두 당 말고 정의당이 왜 따로 또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선명성일 수도 동시에 확장성일 수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민노당이 2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은 적이 있다. 보수 양당이 전혀 하지 않은 무상의료·무상교육·부유세를 이야기하니까 유권자들은 ‘민노당이 두 당이 하지 않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구나’ 하면서 선택을 하게 된 거다. 지난 몇 년 정의당이 흔들렸다. 그러한 성찰에 기반을 둬서 정말 정의당이 대한민국 사회에 별도로 꼭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우리 사회 시스템을 복지국가시스템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돌봄 국가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이정미 전 정의당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영등포 캠프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돌봄’이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사람이 어려울 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를 ‘외로움’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돌보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출마 선언에서 ‘돌봄 국가’를 제시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몇 가지 돌봄정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 몰아닥친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자는 거다. 대한민국은 20년 넘게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가 돼 왔다. 더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사람들이 사는 지방 단위로 주민을 보살필 수 있는 권한과 예산을 모두 내려줘야 한다. 복지예산 덩어리 전체를 지역 통합돌봄시스템으로 보내고 각 지역이 이를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한 판단하는 것이다. 장애인, 여성, 아동, 노인, 그리고 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 국가의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 통합돌봄시스템 망 안에 들어오도록 해 관리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또한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케어 해줄 수 있는 ‘돌봄 인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돌봄 인력은 ‘참여소득’(지역사회 시민들이 이웃과 환경을 돌보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새로운 소득체계)이라는 이름의 일정한 보상을 받으면서 일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출마 선언 때 근로, 사업, 이자, 배당, 퇴직, 기타 소득에 이은 제7의 소득, ‘참여소득’을 강조했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과는 어떻게 다른가.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한테 다 주는 거다. 모든 사람에게 평균적으로 나눠주다 보니 실질적인 생계의 한계에 놓인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일정한 수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한계가 있다. 국가가 찍어내는 일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이 사회에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면서 동시에 생계까지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100만개 만든다고 하면 우리나라 정치 실업률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시혜적인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참여소득은 일하는 사람에게 정체성과 자부심을 줄 수 있다.”
―이정미 후보가 정의당 대선후보가 된다면 각 당의 어떤 후보와 맞붙을 것으로 기대하나.
“결국 지금 대세인 후보와 붙게 될 거 같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앞서나간다. 이재명 후보는 한때 당내 비주류로서 기득권 틀 안에 갇히지 않고 다음 시대 도전자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 민주당 기득권 안에 포획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민주당 대권 주자에 방점을 두는 순간 이재명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윤석열 후보는 한마디로 국민의힘이 정권교체를 위해 외주 하청업체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 사고가 난다. 지금 국민의힘은 정권을 빼앗기고 나서 내부 혁신이 상당히 진행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다가 결국 민주당의 실수에 기대어 자기 권력을 불려 나가려는 기존의 ‘적대적 공생관계’ 틀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결국 그 수단으로 윤석열까지 불러들였다. (윤 후보와 맞붙어서) 얼마나 국민의힘이 정당으로서의 자기 완결성이 없는 취약한 조직인가를 여실하게 드러내겠다.”
―최근 펴낸 책 <정치하는 마음>에서 청년과 기성세대 간 갈등을 해결하는 후보가 되겠다고 했다. 어떤 해법을 생각하고 있나.
“지금 청년은 (과거 운동권 세대와 달리) 정치적 주체로서 활동할 공간이 없다. 이들에게 정치적인 연단을 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 내각에도 들어올 수 있도록 하고 현재 기득권들이 과거 데모한 방식으로 정치권력 안에서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 대통령이 되면 내각 안에 주택청 등 청년이 절실한 부처에 청년이 직접 관여해서 맞춤형 정책을 짤 수 있도록 하겠다.”
―이정미 후보가 정의당 대선후보로서 갖는 차별성은?
“2017년 대선의 결과가 우리의 최대치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운 미래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고 정의당의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열정이 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인물이지만 상당히 검증된 실력도 있다고 본다. 정의당이 여태까지 기존 양당에 대한 심판자의 역할을 지속해왔다면 앞으로는 정의당이 집권의 가능성을 여는 ‘미래의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