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자
[현장에서]
행정안전부가 새 정부 국정운영 철학을 담은 ‘국정지표’ 액자를 특정 업체에 맡기도록 유도하는 공문(<한겨레> 2일치 2면 참조)과 관련해 2일 해명자료를 내놨다. 해명 요지는 그 업체가 액자를 제작하는 곳이 아니며, 디자인을 새로 정하면서 문의가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안내해 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행안부 해명대로 이 업체는 직접 액자를 제작하지 않았다. 주문만 받고, 액자 제작은 다른 업체에 맡기는 일종의 ‘원청’ 업체이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액자 제작을 맡길 수 있냐고 묻자, 이 업체 직원은 곧바로 견적서와 입금 계좌번호가 적힌 안내서를 보냈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 회사가 액자를 직접 만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으로 느껴질 뿐이다.
일선 공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이 업체를 소개했다는 해명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행안부 공문에는 액자의 크기와 색깔까지 친철하게 적혀 있다. 그것만 제시하면 어떤 업체도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정도다.
행안부가 공문에 특정 업체를 적어 보낸 게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공무원 조직의 ‘상의하달’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곳이 바로 행안부다. 기자가 아는 공무원 10여명에게 공문을 보여주자 하나같이 “당연히 이 업체에 맡기라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이 업체는 청와대 인사의 알선으로 국정지표 액자를 디자인한 곳이다. 행안부는 다시 청와대 소개를 받아 이 업체를 공문에 적어넣었다. 누구라도 청와대 인사와 이 업체 사이의 유착관계를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공직윤리강령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공정성에 의심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행안부의 이번 행동은 공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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