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기업집단(재벌) ‘동일인’ 지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동일인은 재벌을 사실상 지배하는 ‘총수’를 뜻한다. 보수언론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은 ‘신산업’에까지 재벌 규제의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며 파상공세를 편다. 하지만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쿠팡을 실제로 지배하는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게 순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는 30일 자산 5조원 이상 그룹을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동일인을 함께 정한다. 쿠팡은 올해 처음 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게 확실시되는데, 공정위는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 검토 중이다.
보수언론의 반대 이유는 김 의장 같은 외국인을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인 에쓰오일과 한국지엠의 경우 법인 자체를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과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또 플랫폼에 기반한 ‘빅테크’ 기업에 재벌 규제를 적용하면 성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법에 동일인이 외국인이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또 쿠팡의 소유·지배 구조는 에쓰오일, 한국지엠과 딴판이다. 에쓰오일과 한국지엠의 모기업인 아람코(사우디 국영회사)와 미국 지엠은 개인 총수가 없다. 반면 김 의장은 한국 쿠팡의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의 지분 10%를 갖고 있고, 차등의결권 부여로 실질 의결권은 80%에 육박한다.
오히려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국내 기업에 역차별이 될 수 있다. 공정위는 2017년 네이버의 동일인으로 이해진 창업자를 지정했다. 지분은 4%도 안 되지만 사실상 지배한다고 본 것이다. ‘빅테크 과잉 규제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네이버는 이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불공정거래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네차례나 받았다. 미국과 유럽도 구글·페이스북 등 빅테크의 독점 폐해에 대한 규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 대우’ 규정을 위반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기우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총수일가 사익편취) 등을 ‘반기업 정책’으로 매도하며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폐해에 눈을 감는 것이다.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차후에 김 의장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로 부당이익을 얻어도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는 게 어려워진다.
다만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때 특수관계인(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과 미국 쿠팡 본사에 대한 법 적용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현행법에 명확하지 않은 동일인 정의, 지정 절차 등을 명문화할 때 보완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