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내 주차 문제’로 시작된 한 입주민과의 갈등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초소 앞에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의 갑질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또 벌어졌다. 고인은 주차 문제로 갈등을 빚던 입주민한테 폭행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까지 입고, 일을 그만두라는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6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분신하고 폭행당해 숨진 기억이 또렷한데,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자꾸 되풀이되니 참담하기만 하다.
아파트 경비는 대표적인 고령 비정규 노동이다. 공기업에서 퇴직한 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 경험을 책으로 펴낸 조정진씨는 “석 줄짜리 구인 광고를 내면 일자리를 원하는 노년의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며 이들은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의미에서 ‘고·다·자’로 불린다고 했다. 평생 일하며 사회에 공헌해온 노인들이 존중받기는커녕 다시 생계를 위해 나섰을 때 ‘헐값 노동력’으로 전락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입주민의 갑질이 빈번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단기 간접고용으로 상시적인 고용 불안 상태에 있으니 부당한 대우에 맞서기 어렵고, 본연의 업무인 경비 외에 청소, 분리수거, 택배, 주차 관리 등 온갖 잡무를 떠맡다 보니 입주민과 갈등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최저임금 인상을 무급 휴게시간 확대로 상쇄하면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 구조도 여전하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 사회적 지위의 저평가로 이어지면서 갑질의 온상이 된다. 이번 비극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시각이 적실하다.
그럼에도 극단적 사례가 불거질 때만 반짝 관심이 일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렸다. 사회적 약자인 경비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다수인 입주민의 시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일상생활의 공간인 아파트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일이 벌어지는 건 우리 모두의 비극이기도 하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점차 늘어나는 노인 노동의 인권 사각지대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아파트 경비가 존중받는 노동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정부가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에 직접 나서야 한다. 조례 제정이나 사회적 협약을 통한 지자체 차원의 문제 해결 노력도 더 확산되길 바란다. 근로기준법, 경비업법, 공동주택관리법 등 관련 법규의 엄격한 적용과 더불어 갑질 처벌 조항 신설 등 보완 입법도 필요하다. 철저한 수사도 이뤄져야 한다. 경비노동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입주민들이 알아서 할 영역으로 남겨두지 말고 사회적·법적 규범으로 확립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