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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법관들의 ‘디지털 성범죄’ 인식, 겨우 이 정도였나

등록 2020-04-24 20:59수정 2020-04-25 02:33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회의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열렸다.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중이다. 연합뉴스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회의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열렸다.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중이다. 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됐다. 정부가 지난 23일 고강도의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공분이 아무리 큰들 재판 과정에서 엄벌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형사 처벌의 실효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법관들을 상대로 실시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설문조사 결과는 심각한 우려를 던져준다. 범죄 유형별로 적정 형량을 묻는 설문에 다수 법관들이 매우 ‘관대한’ 답변을 내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경우 법에 정한 형량은 ‘징역 5년 이상~무기징역’인데,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3년형이 적당하다는 응답이 31.6%로 가장 많았고 5년형 23.7%, 2년6개월형 14.8% 순이었다. 법정형의 최저치 이하가 다수를 차지한 셈이다. 판매·소지 등 다른 범죄 유형에 대한 응답도 궤를 같이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의 일환인데, 객관식 보기로 제시된 형량들 자체가 법정형보다 지나치게 낮아 ‘솜방망이 처벌’을 전제한 것이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성착취물 제작 범죄에 대해 보기로 제시된 형량은 가장 높은 게 ‘9년 이상’이었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는 한술 더 떠 제시된 형량 중에서도 낮은 쪽에 많은 답변이 몰린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었던 배경에 법관들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자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잔혹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사법적 판단이 사회 변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법관들이 시대와 호흡하는 현실감각을 벼리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엄격한 양형 기준을 채택해 선고 형량의 상향을 유도할 필요성도 재확인됐다. 양형위원회는 지난 20일 회의를 열고 디지털 성범죄에는 기존 판례보다 높은 양형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정형이 같거나 유사한 범죄에 견줘서도 높은 형량을 권고하겠다고 한다. 양형위가 선례에 얽매이지 말고 비상한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양형 기준도 중요하지만 재판의 1차 근거가 되는 것은 법률이다. 정부가 내놓은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속히 입법화해 더욱 강력한 처벌의 근거를 마련해줘야 한다.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정치권이 이 숙제만큼은 꼭 완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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