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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오거돈 시장의 성범죄, 사퇴로 끝날 일 아니다

등록 2020-04-23 18:27수정 2020-04-24 02:38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시청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자 직원들이 사진기자들의 취재를 막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시청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자 직원들이 사진기자들의 취재를 막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여성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범죄 행위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를 성폭행해 실형을 살고 있는데도 같은 광역단체장으로서 반면교사로 삼기는커녕 버젓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오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문을 보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오 시장은 자신의 행위를 “면담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라고 표현했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라니, 피해자가 받은 고통에 대한 죄의식을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피해자는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저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월급날과 휴가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며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또 “모든 허물을 제가 짊어지고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마치 자신이 ‘대속’을 하는 듯한 어처구니없는 유체이탈 화법이다. “3전4기 과정을 거쳐 시장이 된 이후 사랑하는 부산을 위해 참 잘해내고 싶었다”는 말에서는 자기 연민마저 묻어난다. 피해자의 관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 시장의 범죄는 성폭력처벌법 10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에 정확히 해당한다. 게다가 성추행 이후 주변 사람을 동원해 피해자를 회유하려 했다고 한다. 성폭력 범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차 가해의 전형이다. 오 시장은 피해자의 ‘시장직 사퇴’ 요구를 받고도 미적거리다가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나선 뒤에야 부랴부랴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자의 용기가 없었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임기를 이어갔을 것 아닌가.

오 시장의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서둘러 사과 성명을 내고 그를 제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오 시장의 사퇴나 제명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2013년 형법과 성폭력처벌법의 ‘친고죄’ 조항이 삭제됐으니,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은 당장 수사에 나서 오 시장을 기소해야 마땅하다. 피해자 회유 행위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지역 사회에서 추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세심하고 철저한 보호 조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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