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1일 호르무즈해협으로 파견한 청해부대 왕건함 모습. 사진은 지난달 27일 부산해군작전사령부에서 왕건함이 출항하는 모습. 해군작전 사령부 제공 2020-01-21
정부가 21일 미국-이란 간 긴장이 높은 호르무즈해협에 우리 군을 보내기로 했다. 동맹국 미국의 파병 요구를 피할 수만은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결정으로 읽힌다. 그 대신 정부는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미군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엔 참가하지 않고 ‘독자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절충안은 이미 독자 파병 하기로 한 일본 선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파병에 대해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자유항해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설명대로, 호르무즈해협은 우리 원유 수송량의 70%가 지나는 중요한 길목이다. 미국-이란 사이 긴장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나라 원유 수송 선박의 안전을 한국군이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이 위험에 처한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미군 증파 등으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였던 지난해 5~6월에 몇몇 외국 선박이 피격된 적은 있었으나, 그 이후 제3국 선박의 피해 소식은 없는 상태다. 당장 자유 항해에 대한 위협이 임박한 상황이라 보긴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한국군이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진출함으로써 의도하지 않게 이란군의 어뢰 공격 등을 받을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가 파병 결정에 국회 동의를 받지 않기로 한 건 유감스럽다. 정부는 이미 아덴만에 파병한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페르시아만까지 넓히는 것이라, 별도의 국회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청해부대의 임무는 아덴만 일대의 해적들로부터 우리 선박과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미국-이란 간 충돌 위험이 높은 호르무즈해협 부근에서의 활동은, 단순한 작전범위 확대라기보다는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별도의 파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정부의 독자 파병 결정이 이란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한-미 관계와 남북관계까지 고려한 ‘다목적 포석’임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호르무즈 안전이 위협받게 된 근본적인 책임은 이란과의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미국에 있다는 게 국제사회 평가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파병을 하는 것은 미군의 명분 없는 ‘이란 압박과 봉쇄’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기보다, 국회 동의와 같은 절차를 통해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추진하는 게 옳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