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3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토론회’를 열어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여름처럼 현행 3단계인 주택용(가정용) 누진 체계는 유지하되 누진 구간을 확대한 것을 상시화하는 1안, 여름에만 3단계 누진 체계를 2단계로 줄이는 2안, 아예 누진제를 폐지하는 3안이다. 정부는 지난해 111년 만의 폭염으로 전기요금에 대한 국민 불만이 커지자 일단 7~8월에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하는 한편 ‘근본적 개편’을 위해 전문가와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이번에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국민 여론을 수렴한 뒤 6월 안에 개편을 마칠 계획이다.
누진제 완화는 양면성이 있다. 지구 온난화로 폭염이 일상화하면서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은 이제 국민 건강권 차원에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폭염으로 온열 질환자가 4526명 발생했고 이 중 48명이 숨졌다. 정부가 지난해 누진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한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전기요금 걱정 때문에 국민들이 냉방기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국회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해 폭염을 자연재난에 추가했다. 반면 누진제 완화는 전기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 현 정부의 에너지 공급 전환 정책과도 엇박자가 나는 일이다. 국민 건강권과 에너지 절약을 조화시키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누진 체계는 유지하되 누진 구간만 확대하는 1안이 상대적으로 나아 보인다. 대다수 국민이 지난해와 동일하게 전기요금을 할인받게 된다. 반면 누진 체계 축소나 누진제 폐지는 전기 사용량이 많은 가정일수록 혜택이 더 커져 전기 과소비를 부를 수 있다. 특히 누진제를 폐지하면 전기 사용량이 적은 가정도 요금이 오르게 돼 큰 반발이 예상된다.
다만 1안 역시 정부가 밝힌 ‘근본적 개편’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한시적으로 적용한 누진 구간 확대 방식을 상시화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전기 소비량이 절대적으로 많은 산업용과 일반용(상업용) 전기요금 개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전기 사용량에서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비중이 각각 56%와 30%에 이르는 산업용과 상업용은 누진제도 없고 요금도 상대적으로 싸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은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이는 일을 등한시하고, 도심의 상가에선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튼 채 문을 열어놓고 장사를 하는 점포들이 부지기수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가 전기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폭염 피해를 예방하면서 동시에 전기 과소비를 억제하려면 누진제 개편을 넘어 전기요금 체계의 전반적인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 관련 기사 :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공개…여름 냉방비 부담 줄인다▶ 관련 기사 : 감사원, ‘대기업 특혜’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 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