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공정 7나노로 출하된 웨이퍼칩에 서명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화성/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편중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2030년까지 비메모리로 불리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비중이 80%로 워낙 높아 반도체 경기에 따라 실적이 심한 부침을 보인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4분기에 견줘 반토막이 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보다 시장이 1.5배 크고 경기 변동 영향도 적게 받는다. 이 부회장은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해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한 1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위해 앞으로 10년간 연구·개발(R&D)에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우리 경제는 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함께 신성장 동력의 확보가 절실하다. 정부는 최근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미래형 자동차를 ‘중점 육성 3대 산업’으로 선정했는데, 이날 첫번째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정부도 분야별로 혁신 전략을 수립하고, 국민과 기업들이 과감하게 신산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물론 재벌 총수의 불법·비리와 기업 경영활동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 사정이 어려운 때에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경제주체들과 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또 이전 정부처럼 재벌에 의존하는 경제정책을 펴지 않겠다는 것이 대기업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문 대통령이 대법원 선고를 코앞에 두고 있는 이 부회장을 만난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횡령·뇌물공여 혐의로 2017년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대법원 재판은 5월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을 두고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지금이 민감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자칫 ‘재벌개혁 후퇴’로 읽힐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정부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최근 경제 활력 제고가 강조되면서 공정경제가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이 지지부진한 게 한 예이다. 물론 국회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정부의 소극적 태도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경제 활력 제고와 공정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공정경제의 바탕 위에서만 경제 활력 제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정부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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