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1033개 여성단체 공동주최로 열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증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른바 ‘별장 성 접대 동영상’ 파문에 취임 엿새 만에 물러났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 6년 만에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 사건은 2009년 숨진 배우 장자연씨 사건과 함께 대표적인 권력형 성폭력 의혹이자, 검찰의 부실수사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 사례로 꼽혀왔다.
그동안 ‘김학의 사건’의 무혐의 처분 근거는 동영상 속 인물이 흐릿하다는 이유 등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육안으로도 명백한 (다른) 동영상이 있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의뢰 없이 검찰에 송치했다”는 경찰청장 말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이 동영상을 고의로 제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애초 이 사건은 검찰의 부실 내지 봐주기 수사 의혹이 거셌다. 14일 <한국방송>(KBS)에 나온 피해 여성의 인터뷰는 상세하고 충격적이다. 2013년 보복이 두려워 피해자임을 부정했던 그는 2014년 용기를 내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아무개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에서 ‘동영상 속 행위를 재연해보라’는 등 인격 모독적이고 수치심 주는 요구를 받고 진술은 외면당했다고 한다. 그는 별장 사건 이전부터 김 전 차관을 상대로 한 지속적 성 접대를 강요받았다고도 말했다. 일부 인터뷰 내용을 김 전 차관의 아내가 부인하고 나섰지만, 피해자 증언이 상세하게 공개된 만큼 철저한 재조사나 재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이 불가피하다. 두 차례 검찰 수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이 사안이 어떻게 보고됐는지도 분명히 밝혀야 할 부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이달 말로 활동을 끝내겠다고 고집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김 전 차관은 15일 진상조사단의 조사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재조사가 진행 중인 장자연 사건 역시 최근 장씨의 동료였던 윤지오씨가 ‘별도 리스트’를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하는 등 새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다.
두 사건엔 ‘조선일보 방 사장’을 비롯해 우리 사회 권력층과 유력 인사들이 많이 연루돼 있다. 김학의 사건의 피해 여성과 윤지오씨는 15일 1033개 여성·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진실이 파묻히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과거사위 활동 연장과 조사단의 독립성을 보장해서 이번만큼은 권력의 ‘장막’을 벗겨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