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사퇴 의사를 밝혀 후임에 조재연 대법관이 사실상 내정됐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를 없애고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여서 처장 교체가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 다만, 안 처장이 사법농단 사건 특별조사단을 이끌며 ‘임종헌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주도했고, ‘안철상 행정처’가 사법행정 개혁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런 지적과 비판을 수용해 이번 인사를 사법부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안 처장은 3일 출근길에 사의 표명 사실을 공개했다. 일부에서는 김 대법원장과의 갈등설을 제기하고 있으나 이보다는 사법농단 조사와 이후 사태 진전 과정에서 국민과 국회 등의 비난을 받으며 갈등과 고통을 겪은 때문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겪은 고초와 별개로, 안 처장은 ‘양승태 대법원’이 저지른 사법농단 사태를 ‘김명수 대법원’이 미봉하는 데 앞장선 결과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초 전대미문의 재판거래·법관사찰 범행을 ‘징계’ 수준에서 미봉하려다 여론의 반발로 결국 김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 방침을 밝히는 상황을 불러왔다. 이후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외에 대부분의 구속 및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자, 안철상 조사단이 애초 발표한 선에서 ‘꼬리 자르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안 처장은 ‘재판거래는 없었다’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등의 발언으로 사법농단 법관들을 감싸는 행태를 보여 ‘김명수 대법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특히, 없다던 블랙리스트, 즉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 문건이 행정처 캐비닛에 고이 보관돼온 사실까지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대법원의 공신력은 만신창이가 됐다.
사법행정 개혁과 관련해서도 사법발전위가 내놓은 법 개정안을 후퇴시키는 과정에서 행정처가 사전에 짜놓은 각본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개혁 의지마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김 대법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신뢰받는 법원’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려면 법 개정 이전에라도 사법행정 조직을 쇄신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 재판에 개입하고 동료를 사찰한 판사들한테 국민들이 재판받아야 하는 황당한 상황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