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농단’ ‘재판거래’ 의혹 규명과 함께 ‘사법발전위원회’를 통한 개혁을 촉구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정한 문책’을 다짐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법발전위의 전향적인 제안도 전폭 수용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런 약속과 다짐은 현실의 벽 앞에서 무척이나 공허하게 들린다.
재판거래의 핵심 물증은 영장판사를 비롯한 사법부의 방조 속에 이미 파기돼버렸다. 그런데도 김 대법원장은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독립적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규명해줄 것으로 믿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대법원’ 방어 태도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사법부의 수장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거듭 남발하는 것은 국민의 분노만 유발할 뿐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공통으로 거론한 사법발전위를 통한 개혁도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사법발전위는 지난 7월 6차회의에서 기존 법원행정처를 없애기로 하고 대신 외부인사가 포함된 사법행정회의와 산하 사무처를 설치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가 지역별 법관간담회와 일부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법원 내부인사만으로 사법행정회의를 꾸리는 안을 슬쩍 포함했다. 사무처 비법관화도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법관들이 통제’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없애기로 한 고법부장판사제도 법원조직법 부칙에 기존 ‘직위’는 유지하는 것으로 꼼수를 부렸다.
모두 법원행정처 작품으로 보인다.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장을 맡았던 안철상 행정처장은 사법농단과 재판거래의 몸통인 ‘양승태-박병대’ 보호를 위해 ‘임종헌 꼬리자르기’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이후에도 자료 공개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통에 이미 법원 안팎의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사법농단 수사 방해는 물론 사법개혁마저 왜곡하고 있다.
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0일 사법행정 구조 개편을 위해 외부인사까지 포함된 별도의 추진기구 구성을 요구했다. 김 대법원장이 개혁 의지가 있다면 ‘안철상 행정처’가 일체의 개혁 작업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