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상식’이라는 말은 영어의 ‘코먼 센스’(common sense)의 번역어다. 코먼 센스는 라틴어 ‘센수스 코무니스’(sensus communis)의 번역어이며, 센수스 코무니스는 다시 그리스어 ‘코이네 아이스테시스’(koine aisthesis)의 번역어다. 세 언어 모두 ‘공통감각’이라는 같은 뜻을 품고 있다. 상식이란 말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공통감각에 이른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코이네 아이스테시스를 센수스 코무니스로 번역하면서 이 말에 공동체적 감각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상식이란 공동체 안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감각이다. 그러므로 공통감각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 판단도 아니고 어디서나 타당한 진리도 아니다. 공통감각은 시대와 지역과 문화의 규정을 받는다. 이 공통감각이 힘을 발휘하는 곳이 정치공간이다. 정치는 공통감각이 경합하는 장, 상식과 상식이 맞붙어 겨루는 장이다. 6·13 지방선거 개표방송은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던 공통감각이 붕괴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수구보수의 두뇌인 서울 강남과 이 두뇌의 신체라 할 영남지역을 강고하게 지배하던 공통감각이 해체돼 새로운 공통감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렸다. 우리 사회와 정치를 떠받쳐온 이 공통감각은 한마디로 줄이면, 분단체제의 산물이다. 한국전쟁이 남긴 거대한 트라우마가 공통감각의 모태를 형성했고, 이 모태에서 분단 기득권 집단은 남북의 대결과 증오를 이용하고 부추겨 반공·냉전의 공통감각을 육성했다. 휴전선 이북을 타자화·악마화하는 이데올로기 조작을 통해, 이미 형성된 공통감각을 훈육하는 집요한 내부전쟁을 벌였다. 분단체제가 공통감각을 떠받치고, 공통감각은 다시 분단체제를 지탱했다. 이 악순환의 시스템에 첫 번째 일격을 가한 것이 촛불혁명이라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분단체제에 결정적 타격을 안김과 동시에 이 체제가 낳은 공통감각을 붕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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