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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 햇발] 분단체제 해체와 ‘공통감각’ 재편 / 고명섭

등록 2018-06-19 17:49수정 2018-06-19 18:56

고명섭
논설위원

‘상식’이라는 말은 영어의 ‘코먼 센스’(common sense)의 번역어다. 코먼 센스는 라틴어 ‘센수스 코무니스’(sensus communis)의 번역어이며, 센수스 코무니스는 다시 그리스어 ‘코이네 아이스테시스’(koine aisthesis)의 번역어다. 세 언어 모두 ‘공통감각’이라는 같은 뜻을 품고 있다. 상식이란 말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공통감각에 이른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코이네 아이스테시스를 센수스 코무니스로 번역하면서 이 말에 공동체적 감각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상식이란 공동체 안에서 통용되는 공통의 감각이다. 그러므로 공통감각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 판단도 아니고 어디서나 타당한 진리도 아니다. 공통감각은 시대와 지역과 문화의 규정을 받는다. 이 공통감각이 힘을 발휘하는 곳이 정치공간이다. 정치는 공통감각이 경합하는 장, 상식과 상식이 맞붙어 겨루는 장이다. 6·13 지방선거 개표방송은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던 공통감각이 붕괴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수구보수의 두뇌인 서울 강남과 이 두뇌의 신체라 할 영남지역을 강고하게 지배하던 공통감각이 해체돼 새로운 공통감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렸다.

우리 사회와 정치를 떠받쳐온 이 공통감각은 한마디로 줄이면, 분단체제의 산물이다. 한국전쟁이 남긴 거대한 트라우마가 공통감각의 모태를 형성했고, 이 모태에서 분단 기득권 집단은 남북의 대결과 증오를 이용하고 부추겨 반공·냉전의 공통감각을 육성했다. 휴전선 이북을 타자화·악마화하는 이데올로기 조작을 통해, 이미 형성된 공통감각을 훈육하는 집요한 내부전쟁을 벌였다. 분단체제가 공통감각을 떠받치고, 공통감각은 다시 분단체제를 지탱했다. 이 악순환의 시스템에 첫 번째 일격을 가한 것이 촛불혁명이라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분단체제에 결정적 타격을 안김과 동시에 이 체제가 낳은 공통감각을 붕괴시켰다.

워싱턴 정치문법을 존중할 뜻이 없는 도널드 트럼프는 김정은과 처음 만나 케미스트리, 곧 마음의 화학작용을 거침없이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언제든 연락하자고 했다니 남자들끼리의 애정, 브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파격이다. 트럼프는 국가안보의 동아줄이라고 여겨온 ‘한-미 군사훈련’도 돈이 아주 많이 드는 ‘워게임’(war game)이라고 선언했다. ‘전쟁놀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이 워게임이 북한의 눈엔 ‘도발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음도 처음으로 인정했다. 트럼프가 놓친 것이 있다면, 이 게임이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남쪽의 공통감각을 조율하는 심리전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남-북-미 정상들의 만남과 교감으로 분단체제는 해체 과정에 들어섰다. 분단 기득권 세력이 외워대던 마법의 주문으로부터 공동체 구성원들의 판단력도 해방되고 있다. 낡은 공통감각이 허물어진 자리에 훨씬 더 분별 있는 공통감각이 들어서고 있다. 이제껏 상식으로 통하던 것들이 몰상식이 될 처지에 몰렸다. 분단체제의 해체가 공통감각의 붕괴를 낳고, 공통감각의 붕괴는 다시 분단체제의 해체를 가속화하는 선순환이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철거되고 그 자리를 남북의 협력과 결속의 기운이 채우면, 나라가 통째로 넘어갔다고 우기는 분단 세력은 몰상식의 섬에 갇혀 소멸해 갈 것이다. 반대로 긴 세월 냉전의 섬이던 한반도 남쪽은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대륙으로 나아갈 것이다. 평화체제가 분단체제를 대체할 날이 멀지 않았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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