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그 최고책임자 격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부적절한 행위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하거나 재판을 이용한 거래가 없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나라한 문건 내용이 알려지면서 반발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국민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설명이다. 특히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에 불응한 이유에 대해 “내가 가야 되냐”며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당시 최고책임자로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듯해 안타깝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재판 뒷거래’ 의혹에 대해 “재판의 독립을 금과옥조”로 40여년 지내온 사람으로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법관들에 대한 “심한 모욕”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그러나 원세훈 사건만 봐도,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이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연구관에게 넘겨져 전원합의체 판결문에 핵심 근거로 인용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통령 면담용 말씀자료에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으로 꼽은 16가지 판결 중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해고 사건 등 상당수는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납득하기 어려운 법리로 뒤집었다. 대법원 구성의 보수성 때문에 나온 판결을 사후에 대통령 비위에 맞추려 포장한 것인지, 실제 국정운영을 도우려 마음먹고 그렇게 판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은 “화젯거리가 있어야 되니까 말씀자료가 나오는 것”이라며 자료를 봤을 가능성까지 부인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3차례 자체 조사에서 의혹을 씻어내지 못했는데, 그의 태도로 보아 법원 스스로 진실을 밝혀내기는 더이상 어려워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31일 국민들에게 사과하면서 고발 여부에 대해 사법발전위와 법관대표회의 등의 의견을 종합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일엔 “사찰 피해 법관들을 위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내부 메일을 전국 판사들에게 보냈다. 판사들은 법원별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일각에선 재판 결과가 흔들리면 안 된다며 ‘법적 안정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민이 불신하는 안정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 대법원장은 다소의 불안을 감수하고라도 국민 신뢰를 받는 길을 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