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하 철도노조 케이티엑스 지부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30일치 <한겨레> 1면 사진 속 김승하씨는 울고 있었다. 그는 2년3개월을 케이티엑스(KTX) 승무원으로 일하고 12년 넘게 해고노동자로 살아왔다. 김씨를 비롯한 여성승무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벌인 전날 시위를 ‘초유의 대법원 난입시위’라며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 삶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판결이 정치적 거래나 흥정의 대상이었을 수 있다는 데 대한 정당한 분노이자 절규다.
케이티엑스 해고 여승무원 문제는 비정규직과 여성을 외주화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04년 케이티엑스 개통 당시 14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 전환과 직접고용을 전제로 한국철도공사의 100% 자회사에 입사했던 20대의 젊은 여성승무원들은 2년 뒤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다가 거리로 내쫓겼다. 최종 해고된 180명 가운데 34명이 철도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1심과 2심은 모두 철도공사가 실질적 고용주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은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근로자 파견 관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뒤엎었다. 이 판결로 1심 뒤 받았던 4년치 급여에 이자까지 덧붙여 1억원에 가까운 빚폭탄이 각자에게 떨어졌고,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살짜리 아이를 남긴 채였다.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에서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장-박근혜 대통령 독대 대비 문건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이 판결을 “사법부가 브이아이피(VIP)와 비에이치(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로 예시했다. 당시에도 1·2심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이례적 판결이라는 비판이 컸는데, 이제 공정성 자체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런 판결을 청와대에 협력사례로 자랑하자고 꼽은 법원행정처의 태도는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30일 이들과 면담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로 정의를 세우는 것이 이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길일 것이다. 올해 들어 철도노조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한 철도공사는 더 적극적으로 승무원들 문제 해결에도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