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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중근을 생각한다

등록 2005-01-04 21:25수정 2005-01-04 21:25

100년 전,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됨으로써 사실상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 60년 전에는 일본제국의 패망으로 강점기의 시련에서 벗어났다. 40년 전에는 적어도 형식상 대등한 관계로 복귀했다. 그렇게 100년이, 60년이, 40년이 지난 오늘 일본 열도에는 ‘한류’ 물결이 거세다. 현대 일본인에게 한류는 따스함과 인간애, 곧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의 파고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날 우리 가족이 선택한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전쟁이 없는 세상, 곧 평화였다.

새해 연휴 필자가 책더미를 뒤져 찾아든 것은 안 의사의 공판기록을 담은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이기웅 옮겨 엮음, 열화당, 2000년)였다. 그 선택은 올해가 을사늑약 100주년이란 것과 미야자키의 영화를 본 소감의 우연스런 연장선에 놓여 있다.

“지금까지 이미 수차 말한 대로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의 문제에 있고, 일본 천황의 (러-일 전쟁) 선전 조칙과 같이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하는 것이 내 평생의 목적이자 또한 평생의 일이다. … 그런데 이토는 한국을 침략하고 동양 평화를 어지럽게 했다.”

스물일곱 열혈청년 ‘안응칠’은 북위 39도선 이북의 한반도 분할을 요구한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에 열광했으나, 일본이 정작 ‘전쟁 이유’로 삼은 조선의 독립수호 약속을 저버리고 을사조약을 강제하자 항일 운동에 투신했고, 4년 뒤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적장’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의 ‘전쟁 이유’는 한국 독립의 공고화, 항구적인 동양 평화로 가는 길이었다. 하얼빈역의 총성에는 그 비원이 간절히 담겨 있다.

“나는 한, 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또 평화롭게 다스려져 오대주의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였다. 결코 나는 이토의 시정을 오해하여 그를 죽인 것이 아니다. 오늘 이후 일본이 한국에 대한 시정 방침을 개선한다면 한-일 간의 평화는 만세에 유지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희망하고 있다.”(1910년 2월 법정 최후진술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어떠했는가?

“만약 한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정책을 숨기고 그 나라에 임하여 정치를 하는 자가 있다면 어떻게 그 국민의 교육을 장려하고 산업을 진흥시키고 그 국왕으로 하여금 덕을 닦아 국민을 편안하게 하도록 하겠는가. … 요컨대 일본이 한국에 임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는 한국의 국력을 발전시키려는 데서 벗어나지 않는다.”(1909년 대구와 평양의 연설에서)

두 사람은 약 5개월 간격으로 죽었다. 이미 생존 때부터 ‘일본 건국사상의 대인물’로 추앙받은 이토. 조선에 대해서는 정자산(정나라의 대부로 정목공의 손자)을 자임했던 그가 죽은 지 불과 열달 남짓 만에 조선은 일본에 완전히 병탄되었다.


안중근은 그의 최후에 이르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지금도 뤼순(여순) 감옥 뒷산 어딘가에 이름 없이 묻혀 있다.

그렇게 한 세기가 흘렀다. 일본에서는 을사조약 100년, 한-일 수교 40년을 기념해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광복 60돌을 맞아 안 의사 유해 발굴과 봉환을 남북 공동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이 힘을 모으고 중국과 일본이 진심으로 돕는다면 동양의 세 나라는 100년 전의 ‘하얼빈’으로부터 좀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공언은 그 무덤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거짓말이 됐지만, 안중근의 꿈은 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가능태로 남아 있다. 그것이 과거가 현재에게 말하고자 하는 ‘역사’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4년 뒤에는 안 의사 의거 100돌과 이토 사거 100돌을 나란히 맞이한다. 이인우 문화생활부장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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