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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선거제도 개혁 전제로 ‘총리 추천제’ 논의해보자

등록 2018-03-22 18:48수정 2018-03-22 20:06

권력구조 절충 못하면 개헌 불가
대통령제 뼈대에 ‘권력 분산’ 필요
여야 당장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대통령 개헌안 발의 ④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가운데)이 22일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왼쪽)를 찾아 대통령 개헌안을 전달했다. 오른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가운데)이 22일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왼쪽)를 찾아 대통령 개헌안을 전달했다. 오른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청와대가 22일 개헌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전문을 공개했다. 헌법 전반을 폭넓게 손질하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 쟁점을 짚어보고 토론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다. 물론 야당은 사안에 따라 생각과 해법이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견을 제시해서 폭넓은 토론을 하는 게 정치권의 책무다. 아무런 방안도 내놓지 않고 무조건 반대만 한다면 국민이 수긍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연임 대통령제’를 제시했다. 헌법재판소장 임명권 등 대통령 인사권을 일부 축소하고, 감사원 독립 등을 통해 권한을 분산했다. 하지만 야당이 요구하는 총리 선출제 또는 추천제엔 거부 뜻을 분명히 했다. 자유한국당의 ‘총리 선출제’는 사실상 내각제나 이원정부제에 가깝다. 국회의원들은 선호해도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총리 추천제’를 주장한다. 여당 또는 여당이 구성하는 다수파가 추천하는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제도다. ‘협치’를 촉발하고 의회정치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도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총리의 긴장 관계 △총리와 대통령의 당적이 달라 발생하는 ‘이중 권력’의 문제 △대통령이 국회 추천을 거부할 경우 발생할 혼란 등을 꼽는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프랑스에서는 간혹 이런 ‘동거정부’가 출현하지만, 제도와 풍토가 다른 우리 현실에선 국민이 이를 선뜻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개헌과 별개로 선거제도 개편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현 제도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차이가 너무 커, 버려지는 표(사표)가 너무 많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부산·울산·경남 득표율은 51.2%에 그쳤지만 의석은 92.3%를 독식했다. 대통령 개헌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투표자 의사에 비례한 국회 의석 배분 원칙’을 명기했다.

정의당은 선거제도를 고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자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도 찬성하는 제도다. 반대를 굽히지 않았던 자유한국당도 절충할 뜻을 밝혔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 소수자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길이 뚫린다.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을 막아, 정책 경쟁이 가능한 정치구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면서 동시에 ‘총리 추천제’를 논의해보자는 정의당 의견을 정치권이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개헌과 선거제도의 ‘패키지 처리’ 방식인데, 그나마 정치권에서 절충 여지가 있는 방책으로 꼽힌다. ‘총리 추천제’는 추천 방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안이 가능할 수 있다. 대통령 인사권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타협안을 찾는 게 영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권력구조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개헌은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편에 정치생명을 걸다시피 했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다수당에 총리직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연동형 비례제와 총리 추천제 ‘패키지 처리’와 맥이 닿는다. 그때는 요지부동이던 야당이 지금은 절충할 수 있다고 나온다. 집권여당이 이런 논의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권력구조에 정답은 없다. 대통령제도 내각제도 각각 장단점이 있다. 총리 추천제도 모자람이 없을 수는 없다. 개헌은 ‘선악’이 아니라 ‘국민 선택’의 문제다. 그래서 ‘올바른 개헌’이 아니라 ‘합의된 개헌’만 가능하다. 중요한 건 어느 제도가 시대 상황과 국민 요구에 더욱 부합하느냐일 것이다. 타협하지 않고 각자 의견을 고수하면 결과는 불 보듯 명확하다.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에서 부결될 테고, 천재일우의 개헌 기회는 또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흘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기본권 확대와 토지공개념 도입 등 수많은 긍정적 요소를 여야 다툼 속에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 정치권은 지금 당장, 무조건 논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여당인 민주당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대통령안’을 한점 한획도 고쳐서는 안 되는 절대 교시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대통령이 제시한 개헌안을 토대로 해서, 국회가 국민 뜻에 기반해 극적인 타협을 이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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