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요 결정을 할 때면 찾는다는 백두산을 최근 방문한 사진이 공개됐다. 눈 덮인 정상에 롱코트 정장과 구두 차림으로 서 있는 모습이 어딘지 어색했다.
백두산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근거지로, 김정일이 여기서 태어났다고 북한은 주장한다. 양강도 삼지연군 백두산 밀영에는 귀틀집으로 된 김정일 생가가 있다. 김일성의 백두산 항일투쟁은 1980년대 말 일제 자료 등이 공개되면서 실체가 확인됐다. ‘가짜 김일성론’이 허구라는 게 폭로됐지만, 북한에서 쌓은 김일성 신화도 붕괴되기 시작했다.(<현대북한의 이해>, 이종석, 역사비평사)
이종석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만주 항일유격투쟁은 조-중 연합으로 이뤄졌고 지도부는 중국 공산당이었다. 김일성은 24살이던 1936년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3사 사장이 되어 600명 병력을 거느렸다. 과반수가 조선인이었다. 1937년 보천보전투로 명성을 얻은 뒤 일제 토벌이 심해지자 1940년 10월 국경을 넘어 블라디보스토크 근처로 갔다. 당시 조-중 연합군 지도부는 김일성의 월경이 단독 결정이었다며 책임을 추궁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김일성은 김정숙과 살림을 차리고 1942년 김정일을 낳았다.
북한은 나중에 항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이란 말로 대체했고, 1930년대 김일성만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혁명적 실천을 결합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사회과학원의 <현대조선역사>는 조선인민군 주력부대가 백두산 일대에 수많은 밀영을 설치했고, 그곳은 반유격구, 혁명화 지대로 전변됐다고 적었다.
김정은은 앞선 두 수령보다 유독 백두산을 강조한다. 백두산 칼바람 정신, 백두산 대국 등의 구호로 3대 세습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다. 백두산을 찾은 건 지도자의 호연지기를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 호연지기를 평화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쪽으로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백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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