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2018년도 예산안’ 표결을 진행하자 반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이 6일 새벽 국회를 통과했다. 야당의 반대로 일부 복지정책이 후퇴하고 공무원 증원 규모가 축소되기는 했으나, 적극적인 재정 집행을 통해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됐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장의 실패를 이제는 정부가 발 벗고 나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예산은 429조원 규모로 올해보다 7.1% 증가했다. 올해 예산 증가율 3.7%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된다. 우선, 일자리를 포함한 복지 예산이 대폭 늘었다. 증가율이 11.7%로 역대 예산 중 가장 높다. 전체 예산 중 복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처음으로 3분의 1을 넘어섰다. 내년 9월부터 만 5살 이하 유아(소득 하위 90% 이하)에게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만 65살 이상 노인(소득 하위 70% 이하)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해온 기초연금은 내년 9월부터 25만원으로 확대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이 지원된다.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양극화 심화와 고용 악화를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두고 일부 야당과 보수언론은 ‘무차별적 퍼주기’니 ‘세금 나눠먹기’니 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는데, 옳지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재벌 중심 경제’가 지속되면서 성장의 과실을 대기업이 너무 많이 가져갔다. 그 결과 기업과 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등 각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방치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016년 1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은 이미 몇년 전부터 “불평등 심화는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고 경고하면서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통해 소득 분배를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정반대의 길을 가는 바람에 저성장이 깊어지고 불평등이 커졌다.
이번에 대기업과 초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증세를 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재정수입을 늘리고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증세 대상이 각각 77개 기업과 9만3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늘어나는 세수도 법인세와 소득세가 각각 2조3천억원과 1조1천억원으로 3조4억원에 그친다. 저출산·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폭넓은 증세 없이는 계속 늘어나게 될 재정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번 ‘핀셋 증세’를 ‘보편적 증세’로 확장하기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국민 동의를 전제로 복지 확대와 보편적 증세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이다. 특히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은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사업주를 통해 지급한다고는 하나 노동자 300만명에게 매달 13만원씩 보조금을 주려면 치밀한 계획과 체계적 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장에서 큰 혼선이라도 빚어지면 최저임금 인상이 연착륙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공무원 9475명 증원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꼭 필요한 인력을 뽑는 것인 만큼 채용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는 차질 없는 집행으로 국민이 달라진 예산의 효과를 생활 속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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