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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햇발] 적폐청산 ‘리셋’ / 백기철

등록 2017-11-09 17:08수정 2017-11-09 19:52

백기철
논설위원

5·18 행불자 암매장 장소로 지목된 옛 광주교도소에서 최근 발굴이 시작됐다. 작업에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왜 37년이 지나서야 하는지 좀 의아했다. 1980년대부터 암매장설은 파다했다.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국방부 특위가 꾸려진 것도 올해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제서야 한단 말인가.

최근 다스 실소유주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이명박 전 대통령.
최근 다스 실소유주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이명박 전 대통령.

진실규명이든 적폐청산이든 이상한 ‘루틴’이 있다.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단속적으로 진행된다. 무슨 계기가 있으면 속도를 내다가 좀 지나면 수그러든다. 5·18은 디제이 때도, 노무현 때도 했다. 그런데 이제 또 한다. 세월호도 그렇다. 1기 특조위가 허망하게 끝나면서 2기를 준비 중이다. 국정원 댓글도 다시 파헤쳐지고 있다. 다스도 재조명되고 있다. 노회찬 말대로라면 이명박은 이제야 감방을 가야 할지 모른다.

할 수 있을 때 제대로 해야 한다. 지금 파헤치는 게 잘못이 아니라 이전에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문제다. 그때 제대로 했으면 다시 들출 일 없다.

이렇게 지체되니 정치보복이라고 아우성이다. 국세청 동원해 표적수사로 논두렁 시계 내놓은 건 정치보복이 아니고, 촛불의 힘으로 10년 적폐를 들추는 건 정치보복이라 한다. 둘을 같이 놓고 정치보복의 악순환이라 하면 곤란하다. 지금의 적폐청산은 지난해 촛불 때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그 화살이 어디까지 갈지는 우리 사회의 수준과 능력에 달렸다.

5·18이든 세월호든 국정원이든 다스든 이번엔 제대로 하자. 나중에 또다시 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자. 그러려면 조급히 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시한을 두고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이제 정권 출범 6개월인데 앞으로 3년, 4년 더 하면 어떤가.

힘 빼고 차분히 하자. 대신 꿋꿋이 오래도록, 끈질기게 하자.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밝힐 건 밝히고 책임 물을 건 물으면 된다. 우선순위와 옥석을 가리고 시급한 일과 중장기 과제를 잘 구별해 대처하자.

블랙리스트나 국정원 댓글 같은 반민주 범죄는 기한을 둘 필요가 없다. 정권 내내 조사한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정권 초 부역자 색출하듯 들쑤시다가 곧 없던 일로 할 게 아니다. 물론 수사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전광석화처럼 할 건 해야 한다. 하지만 호흡은 길게 가져가야 한다.

세월호 같은 사안은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장기적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월호 2기 특조위를 만들어 3년이건 5년이건 유족들의 의문이 없어질 때까지 하면 안 되나. 5·18도 이번엔 끝낸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검찰이건 정부건 묵묵히 조사하면서 필요한 조처를 하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브리핑할 게 아니라 2~3개월에 한 번 브리핑하고, 마지막에 백서 형태로 국민에게 보고하면 된다. 꼼꼼히 기록해 역사에 남겨야 한다.

청산은 미래와 연결될 때만 위력을 발휘한다. 청산과 함께 달라진 미래를 그려내야만 적폐와 결별할 수 있다. 지금은 부처와 기관이 미래의 정책을 밤낮으로 고민해도 모자랄 때다. 적폐청산이 제일 중요한 일인 양 돼선 곤란하다.

청산을 극대화하려면 적폐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제도와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국정원의 온전한 제도적 개혁, 강력한 공수처 설치, 말 그대로의 공영방송 확립 같은 게 있다. 무지막지한 낙하산 인사나 내로남불 인사가 재연돼선 곤란하다. 청산만 열심히 하면서 적폐적 관행을 되풀이하면 하나 마나다. 청산과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미래를 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을 완성하는 길이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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