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달걀 파동’과 관련한 정부 대응을 보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국회와 소비자단체의 경고를 흘려들어 사전예방에 실패하더니, 대응 과정마저 엉망이었다. 금지된 살충제를 사용한 농가에 1차 책임이 있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18일 살충제 달걀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곳 중 49곳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허용 기준치 이상이 검출되면 안 되는’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 이 중 친환경 인증 농가가 31곳으로 63%에 이른다. 또 37곳의 친환경 농가에선 기준치를 넘지는 않았지만 살충제가 검출됐다. 자격 미달인 것이다. 정부는 문제가 되는 달걀을 모두 폐기해 19일부터 출하되는 달걀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수조사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을 보면, 이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검역 담당자가 무작위 샘플로 달걀을 수집하지 않고 농가에서 골라준 것을 수거해 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제대로 대처하려면 정확한 조사가 관건인데, 날림으로 조사를 했다니 어이가 없다. 문제가 불거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장 121곳을 재조사하는 소동을 벌였다. 중간발표 땐 틀린 통계를 내놓는 오류를 반복해 불신을 자초했다.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은 방사형 농장이 부적합 농가로 발표돼 억울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친환경 인증제’가 엉터리로 운영되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수조사 결과 살충제 달걀의 60% 이상이 친환경 인증 제품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다. 비싼 가격을 부담하면서까지 친환경 제품을 구입해온 소비자들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부는 친환경 인증 업무를 64개 민간업체에 맡겨놓은 뒤 사실상 방치해 왔다. 친환경 인증제를 허술하게 운영해온 정부의 잘못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인증업체를 통폐합해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먹거리에 대한 신뢰는 한번 추락하면 좀처럼 회복하기 힘들다. 특히 달걀은 값싸고 영양가가 높아 온 국민이 즐겨 먹는 ‘국민식품’이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공장식 밀집사육부터 친환경 인증제까지, 식품안전 체계 전반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또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운 농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한 책임도 엄정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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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17일 양주시청 직원들과 농장 관계자들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을 폐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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