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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유레카] 덩케르크 / 백기철

등록 2017-07-24 16:51수정 2017-07-24 19:35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됐다. 히틀러는 침공 직전 소련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비밀리에 폴란드를 나눠갖기로 했다. 독일은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를 차례로 점령하고 1940년 5, 6월에는 프랑스를 6주 만에 점령했다. 이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도 기습적으로 점령했다.

영국이 다음 차례였다. 독일은 1차 대전에서 동쪽 러시아와의 전쟁은 승리했지만 서쪽에선 영국에 패했다. 히틀러는 이를 교훈 삼아 영국과의 전쟁은 피하려 애썼다. 하지만 영국과의 교섭이 여의치 않자 외려 소련과 ‘절반의 동맹’을 맺은 채 영국·프랑스와 먼저 전쟁을 벌였다. 독일은 영국을 정복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독일은 대함대를 보유하지 않았고, 군대를 영국에 상륙시킬 여력도 충분치 않았다.

1940년 8, 9월 독일 공군의 영국 공습은 전쟁의 분수령이었다. 영국은 독일과의 공중전에서 제공권을 지켰고 독일의 영국 침공은 오랫동안 불가능해졌다. 이는 서부전선에서 히틀러의 승리를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자원을 지닌 매우 끈질긴 적을 서방에 남겨둔 것이다. 히틀러는 이어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함으로써 전략적 실책을 저질렀다. 소련의 반격이 시작된 1941년 12월에는 미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예고된 패배의 길로 들어섰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돌베개)

최근 개봉한 영화 <덩케르크>에서 묘사된 대철수 작전은 독일에 맞선 영국의 필사적인 저항을 잘 보여준다. 1940년 5, 6월 파죽지세의 독일군에 포위된 영국·프랑스군 34만여명을 도버해협 건너편 영국으로 천신만고 끝에 철수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작전은 영국 국민을 단결시켜 독일에 대한 항전 의지를 불태우게 함으로써 2차대전의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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