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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유레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 / 고명섭

등록 2017-05-22 17:20수정 2017-05-22 18:57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우드로윌슨센터의 한국 전문가 제임스 퍼슨이 이런 말을 했다. “서울이 운전석으로 돌아와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는 말은 퍼슨 말고도 여러 전문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말의 기원은 1998년 6월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다.

대통령 취임 뒤 처음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은 빌 클린턴을 앞에 두고 30분 동안 햇볕정책과 그 배경을 설명했다. 정상회담 65분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김대중은 햇볕정책이 미국의 성공에서 배운 것이라고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미국은 냉전시대 내내 소련과 대결했지만 돌아온 것은 공도동망의 위기를 키우는 무기 경쟁뿐이었다. 그래서 1970년대 중반부터 데탕트 정책으로 바꾸고 경제협력을 시작했다. “15년 정도 지나니 소련이 그대로 무너졌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안에서 폭동 한 번 일어나지 않았지만 붕괴했다. 이런 변화는 인류 역사에 일찍이 없었다.” 미국은 중국에도 같은 정책을 펴 죽의 장막을 걷어냈고 베트남과는 전쟁까지 했지만 국교를 수립하고 경제 원조를 했다. 베트남은 친미 국가로 바뀌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문제에서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 클린턴의 말은 한국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북정책을 주도하게 되었음을,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잡는 자주외교의 새 장이 열렸음을 알리는 상징적 발언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대중과 빌 클린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대중과 빌 클린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한국은 운전석을 내주고 보조석 아니면 뒷좌석에 가 있었다. 특히 사드 사태가 벌어진 이후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 밀려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권이 방치한 운전석을 되찾아 균형 잡힌 운전으로 대결을 넘어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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