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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침 햇발] 우리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 고명섭

등록 2017-04-25 18:13수정 2017-04-25 18:59

고명섭
논설위원

플라톤의 <국가>는 정체(폴리테이아)를 그리는 책이지만, 교육(파이데이아)을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이냐는 문제는 어떤 교육을 할 것이냐의 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다. 폴리테이아는 파이데이아와 직결돼 있다. <국가> 7권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가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육받았을 때와 교육받지 않았을 때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상상해보세.” 이렇게 말하고 나서 플라톤은 동굴 속 죄수가 동굴 밖 환한 세상으로 나와 놀라는 장면을 보여준다. 교육이란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배움과 깨달음의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모범이다. 무엇을 모범으로, 목표로 삼느냐에 따라서 교육은 확연히 달라진다. 동굴 안에 갇혀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을 모범으로 삼을 것인가, 동굴 밖으로 나가 세상의 참모습을 본 사람을 모범으로 삼을 것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좋은 시민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며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시민을 기르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현실은 너무도 척박해서 이런 이상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우리 교육은 오래전에 목표를 잃었다. 이 암울한 사태의 바탕에 대학서열체제, 학벌체제가 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여 모든 대학이 수직으로 서열을 이룬 이 체제 아래선 서열의 꼭대기에 접근할 가능성이 큰, 시험 잘 보는 학생이 모범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범에서 벗어난 학생은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오자가 된다.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이 비인간적인 체제를 그대로 두고서 교육다운 교육은 가능하지 않다.

얼마 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제시한 ‘대학서열체제 개편안’은 그래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 교육감은 지금의 대학체제를 바꾸지 않고는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서 개편안을 내놓게 됐다고 말한다. 조 교육감이 제시한 대안의 핵심은 서울대를 포함한 전국의 국립대학 열 곳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것, 다시 말해 프랑스의 파리대학처럼 서울대를 열 곳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 방안은 십여 년 전부터 교육개혁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제안해온 것이지만, 교육당국은 한번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서울대를 열 곳으로 늘리는 것이 교육문제를 일거에 혁파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는 이 끔찍한 서열체제를 깨뜨리는 데 기폭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동안 수많은 입시개선 방안이 실행됐지만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문제의 뿌리인 대학서열체제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청소년들은 마치 ‘메이즈 러너’처럼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기만 했다.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이 여기서 비롯했다.

대학서열체제가 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든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 혁신 없이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축장한 소수 부유 계층을 제외하고 이 땅의 거의 모든 성인들에게 아이 낳기는 불안이고 공포다. 아이를 교육지옥에서 키울 담력도 없고 막대한 사교육비를 감당할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맘 편히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는 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계속 최저치를 경신할 수밖에 없다. 교육 개혁은 다음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대한 일 가운데 하나다. 교육이 교육다워지지 않고 나라가 나라다워질 수는 없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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