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 의심 신고가 줄어들면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기세가 한풀 꺾이는 듯하더니, 마지막 청정지대로 남아 있던 제주도에서도 야생 조류 확진 사례가 나왔다. 다른 지역의 방역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철저히 대응하여, 이번 사태가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지난해 11월 하순 첫 확진 사례가 나오면서 시작된 이번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는 최단 기간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주고 아직 진행 중이다. 채 두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살처분한 가금류가 3150만마리로 2014년 195일간 살처분한 1396만마리의 갑절을 넘었다. 애써 기른 축산농가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 보상비 산정액만도 2660억원으로 사상 최대인데, 달걀값 급등, 관련 산업 위축 등 간접 피해도 크다. 정부의 허술한 방역체계와 어설픈 대응이 빚은 참사라 할 만하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정부 대책은 ‘살처분과 보상’의 반복이었다. 초기 단계에서 확산을 차단하는 데는 몇 차례나 실패했다. 바이러스는 갈수록 강력한 형태로 변이해왔지만, 정부의 늑장 대응, 맹탕 소독약, 전문 인력 부족 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 결과 2003년 첫 피해 발생 이후 9년 동안 정부가 지급한 보상비만 9천억원 가까이에 이른다. 이제라도 방역 및 대응 체계의 허점을 파악해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
늑장 대응을 반복하게 하는 4단계 위기경보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어느 지역에서든 발생하면 곧바로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전문 방역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방역관이 적정 수준의 절반에 그치고, 70개 자치단체에는 아예 방역관이 없는데 어떻게 빈틈없는 대응이 가능하겠는가. 매번 반복된 ‘효과가 떨어지는 소독약품’ 사용 문제도 확실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상하면 끝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버리고, 예방과 조기 차단 체계 구축에 필요한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밀집 사육 대신 친환경 사육을 하면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확산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생산비가 늘어나는 게 약점이다. 친환경 사육의 공적 가치를 인정하고 좀 더 비싼 가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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