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거취 문제에서 ‘대통령의 호위무사’ 노릇을 자임한 것 같다. 이 대표는 19일 이 사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 진상 규명해서 문제가 나오면 당연히 의법조치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 같지만, 실은 ‘혐의 입증 때까지 거취 문제를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는 청와대 입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대통령에게만 코드를 맞추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라기보다 청와대 비서라고 하면 딱 맞을 듯싶다.
전당대회 직후 이 대표가 “대통령과 맞서는 여당 의원은 자격이 없다”고 말할 때부터 대등한 당-청 관계는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여론을 무시하고 국정운영 체계를 흐트러뜨리고 있는데도 여당 대표란 사람이 직언 한마디 못하고 맞장구만 친다면 정권이 제대로 굴러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여당이 청와대나 정부 부처와 다른 건, 여당 지도부는 그래도 당원과 국민의 승인을 받아 구성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훨씬 자유롭게 여론을 수렴하고 때론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견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여론에 귀를 닫고 상황을 심각하게 오판할 때, 정권 내부에서 그나마 솔직하게 국민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집권여당의 대표다. 이 역할을 방기하는 당 대표는 청와대 비서관이나 개인 참모와 하등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바로 지금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시점이라는 걸 이 대표는 깨닫지 못하겠는가.
이 대표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검찰 수사에서 우 수석의 범법 사실이 확인되면 그에 맞게 처벌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대통령을 보좌해서 검찰 등 사정기관을 관할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이란 직책을 지닌 채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이 과연 적절하고 공정하냐는 점이다. 이게 옳지 않다는 건 새누리당 내부 의견만 들어봐도 손쉽게 알 수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무성 전 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 대다수 의원이 우 수석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오직 이 대표와 일부 친박 핵심 의원들만 우병우 수석을 옹호하는 게 대통령을 위하는 길인 양 착각하고 행동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대표는 더는 대통령의 시종이 아니다. 수많은 당원과 지지자들 투표로 뽑힌 공당의 대표다. 민심을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하는 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집권여당 대표의 당연한 책임이고 의무다. 그게 진정 정권을 위하는 길이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이라는 걸 지금이라도 이 대표는 깨달아야 한다. ‘우병우 보호’라는 대통령 뜻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굳이 당 대표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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