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18일 열리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 방식으로 부른다는 기존 태도를 재확인했다. 보훈처는 16일 “참석자 자율 의사를 존중하면서 찬반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렇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럴 거라면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13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겠다”고 밝힌 건 뭔지 묻고 싶다. 이런 식으로 ‘협치’의 기대를 깬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비뚤어진 시각이다.
보훈처는 모든 참석자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제창을 하지 않기로 한 이유로 ‘국민 통합’을 들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는 상황에서 제창 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선 안 된다는 게 보훈·안보단체와 관련 전문가 의견”이라고 보훈처는 밝혔다. 보훈처가 말하는 반대 여론이란 “북한과 관련성이 있어 논란이 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반대한다”는 보훈단체들의 성명을 가리킨다.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논리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광주항쟁을 기리며 불렀던 노래를 ‘북한 찬양’으로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설령 나중에 이 노래가 북한 영화 배경음악으로 쓰였다손 치더라도 그건 북한 영화의 문제일 뿐이다. 광주민주화운동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역사적·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보훈처가 ‘찬반양론’을 이유로 이 노래를 배척하는 건 최소한의 역사의식과 민주주의 가치를 던져버리는 몰역사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일본의 누군가가 안중근 열사를 두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애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면, 보훈처는 그때도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다”며 얼렁뚱땅 넘어갈 텐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희생한 광주시민들을 생각한다면, 국가기관이 ‘북한 찬양’을 주장하는 보훈단체와 극우세력의 주장에 힘을 보태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비뚤어진 인식의 보훈처를 방임하고 오히려 감싸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다. 박 대통령은 이 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약속하고도 보훈처가 합창을 고수하자 그냥 용인해 버렸다. 박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을 ‘군사독재에 항거한 순수한 시민항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뜻인 거 같아 섬뜩하고 불길하다.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조차 보훈처 결정을 비판한다. 오랜만에 조성된 ‘협치’ 분위기도 심각하게 가라앉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게 진정한 ‘국민 통합’이다. 사실과 다른 ‘북한 찬양’ 주장에 휘둘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은 36년 전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 시금석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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