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 여부가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의 청와대 회동 이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의 변화를 가늠할 시금석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에서는 모호한 태도를 거두지 않고 있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 않다. 정부는 국민의 우려를 깨끗이 씻는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애초 이 문제는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에서 확실히 매듭지어졌어야 할 문제다. 박 대통령은 야당 원내대표들이 공식 기념곡 지정을 거듭 요구했는데도 확답을 피하고 “국론분열로 이어지면 문제가 있다”며 “좋은 방안을 찾아보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만 답했다. 어정쩡한 태도로 보훈처에 일처리를 떠넘긴 듯한 모양새였다. 새누리당의 태도도 아쉽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박승춘 보훈처장을 만나 “전향적인 검토를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식적으로 내놓은 방안은 없다. 당 일각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지 않고 제창만 허용하는 방법도 있다는 식의 말도 나오는 것 같은데, 그렇게 꼼수를 부릴 일이 아니다.
박 보훈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봉쇄하고 소모적인 논란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그런 만큼 문제를 푸는 데 앞장서야 할 판인데도 아무런 공식 반응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 시 ‘묏비나리’ 일부를 빌려와 작사하고 김종률씨가 곡을 붙인 노래다.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널리 불린 민중가요의 대표작이다. 그런데도 박 처장은 북한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이 노래를 마치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인 것처럼 몰아붙여 기념식 제창을 막았다. 박 처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2013년 국회는 여야 합의로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공식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내기도 했다. 당시 박 처장은 이 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훈처는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것이 옳다. 또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이 청와대인 만큼 박 대통령은 이 문제부터 제대로 풀어 ‘소통하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번 5·18 기념식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제창하는 국민화합의 마당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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