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 사설] ‘알파고 이후’의 과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다섯 차례 대국이 모두 끝났다. 지난 일주일 사이 우리들은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을 쏙 빼닮은 알파고의 위력에 충격을 금치 못했고, 동시에 포기를 모르는 투혼으로 알파고를 한 차례 무릎 꿇린 인간의 의지에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지켜본 인공지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과잉 열풍도, 과잉 불안도 모두 적절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은 위협적이었으되, 아직은 한계 또한 분명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기계학습(머신러닝) 방식을 따르다 보니, 스스로 학습한 적이 없는 돌발상황과 맞닥뜨렸을 땐 어이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바둑과 같은 두뇌게임이 아니라 무인자동차나 의료 등 일상생활 분야에 곧장 적용됐더라면 치명적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앞길이 아직은 꽤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알파고와 함께한 일주일은 우리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 아프지만 값진 시간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 분야란 첨단 과학기술이 한데 집약된 대표적인 융복합의 영역이자 자연과학·인문학·공학·의학 등을 두루 아우르는 연구개발 능력의 결정판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인내의 시간과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쉽사리 넘보기도 따라가기도 힘들다. 떠들썩한 세기의 대결이 결국 구글의 잔치로 끝나버린 건, ‘구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모방과 실행에만 매달려온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해마다 수십 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단기적 효과의 가능성 위주로 인적·물적 자원을 배분해온 ‘추격자’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종합적인 인공지능 육성방안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는 형태의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움직임도 있다. 미래 인류 문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사업을 번갯불에 콩 볶듯 밀어붙이는 태도도 문제거니와, 정부가 결정하고 기업들은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행태는 여러모로 볼썽사납다. 창조경제 한답시고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 사실상 기업에 할당하는 구닥다리 경제의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중앙일보 사설] 알파고 쇼크를 축복으로 바꾸려면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이 1대 4로 마무리됐다. 어제 벌어진 최종국에서 흑을 잡은 이세돌 9단이 여러 차례 판을 흔들었지만 알파고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로써 이번 대결은 “기계가 바둑에서 인간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던 당초 전망과 정반대로 끝났다.
다섯 차례 대국에서 알파고가 던진 충격은 크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의 장기인 계산능력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바둑팬과 국민들이 진짜 놀란 건 사람처럼 생각하고 두는 듯했다는 점이다. 끊임 없이 유불리를 판단하며 응수타진과 손빼기를 연발했다. 부분 전투에서 강해도 전체 형세를 바라보는 능력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리할 땐 안전운행을 하고, 불리할 땐 승부수를 던졌다. 대세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두터움을 중시하는 모습은 전성기의 이창호와 이세돌을 합쳐놓은 듯했다. ‘인공지능의 도전’으로 시작됐던 대결이 ‘이세돌의 도전’으로 바뀐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제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바둑은 인간이 만든 게임 중 가장 복잡하다. 알파고의 승리는 정해진 규칙 내에서 움직이는 게임의 영역에서 AI가 인간을 넘어섰거나 곧 그럴 것이라는 의미다. 다른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을 보완하고 대신할 날도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다. 알파고 쇼크가 바둑팬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확산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회사의 대표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어디에서도 쓸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개별 상품에서 시스템으로의 통합이라는 흐름이 산업과 일상을 바꿀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은 두루 뒤떨어져 있다. 주력산업을 중공업에 의지하고 있고, 정보기술(IT) 분야의 선두주자인 반도체 산업도 D램 같은 메모리 반도체와 하드웨어 중심이다.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잠재력을 경시하는 풍토가 정부와 기업,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게임산업을 유해산업으로 간주하며 편견과 규제에 묶어 두고 있는 게 한 예다. IT 연구와 제품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 사업과 하드웨어에 치우쳐 있다. 인식과 정책 모두 미래가 아닌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런 면에서 알파고 쇼크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산업과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중장기 목표를 세워 관련 제도와 규제를 정비하고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여기엔 AI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인문학적 토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자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로운 세대에 AI시대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세돌 9단의 분투는 끝났지만 한국엔 알파고가 내준 숙제가 잔뜩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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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알파고와 인공지능 사업의 미래 알파고라는 이름은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로 으뜸을 뜻하는 ‘알파’(α)와 바둑을 의미하는 ‘기’(碁)를 일본식으로 읽은 ‘고’를 합친 데서 나왔다. 이는 2015년, 인공지능 회사인 딥마인드를 구글이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이다. 바둑은 체스, 장기보다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척 많다. 때문에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기가 매우 어려운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의 그래픽 모듈로 이루어진 알파고는 네트워크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찾고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을 통해 프로 바둑기사들을 이길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알파고는 처음에는 약 3000만수 정도의 기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수를 두다가, 바둑을 둘수록 경험을 축적하여 새로운 수를 두도록 설계되었다. 알파고가 마침내 가장 창조적인 바둑을 둔다고 평가받는 이세돌 9단을 이기자, 개발자인 머리 캠밸은 “한 시대가 끝났으며, 이제 새로운 분야로 옮겨갈 때”라고 선언했다. 구글의 시가 총액은 알파고의 승리로 불과 일 주일 만에 58조원이 증가하였다. 구글은 앞으로 알파고의 핵심기술인 머신러닝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결합한 ‘클라우드 머신 러닝 서비스’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금융, 제조, 의료 등의 분야의 업무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머신러닝을 통해 컴퓨터가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예측하고 대처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2020년경이면, 구글은 클라우드 서비스로 거두는 매출이 광고에서 얻는 수익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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