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펼친 세기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내리 세 판을 이기며 ‘승리’를 거뒀다.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드디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동안 보여준 알파고의 냉정하고 뛰어난 기능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이 너무 크다. 이제 충격과 놀라움의 감정을 추스르고 인공지능이 우리 삶과 미래에 던지는 의미를 차분히 짚어봐야 할 때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원치 않는다고 피하거나 두렵다고 거부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분명히 인공지능이 인류 삶에 기여할 여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첨단 의료기술과 접목하거나 극한의 작업환경에서 인간을 대신할 수도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일상의 익숙한 모습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다. 구글뿐 아니라 아이비엠(IBM), 엠에스(MS),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거대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엄청난 투자에 나선 건 인공지능의 잠재적 가치와 산업적 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본 결과다. 정부나 기업 차원의 움직임이 한참 뒤졌던 우리로선 이번 일을 자극과 반성의 기회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몰고 올 세상이 수많은 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당장 일자리에 끼칠 파급력은 섬뜩할 정도다. 가뜩이나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 고용 문제가 많은 나라에서 핵심 사회문제로 자리잡은 마당에, 인공지능이 일반화하면 인간 노동력을 일터에서 내모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전쟁이나 불법행위 등 인류 보편의 가치와 윤리에 어긋나는 일에 쓰일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인간이 개발한 기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건 오랜 인류 역사에서 거듭 확인된 진리다. 알파고만 해도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 1000개의 서버로 이뤄진 클라우드컴퓨팅 체제다. 막대한 자본을 집중할 수 있는 구글과 같은 거대기업이나 손에 쥘 수 있는 21세기의 ‘생산수단’이다. 인공지능에 따른 혜택이 극소수에 집중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론 외려 극심한 불평등만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 판을 친다 해도 기술 발전이 몰고 올 사회 불평등을 줄이는 해법을 찾아내는 건 결국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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