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3일 마침내 제20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 기준 합의서에 서명했다. 국회가 오는 26일 본회의에서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보내오는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을 처리한다고 해도 4·13 총선까지는 불과 50일도 남지 않는다. 지각 처리도 이만저만한 지각 처리가 아니다.
선거구 획정 기준을 보면 여야가 지난달 23일 합의한 내용과 똑같다. 지역구는 253석으로 현재보다 7석 늘어나고 비례대표는 그만큼 줄어들어 47석이 된다. 내용이 전혀 변함이 없는데도 국회 처리가 마냥 지연된 것은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 이른바 ‘대통령 관심 법안’과 선거구 획정안을 연계해 몽니를 부린 탓이다. 그동안 야당이 새해 예산안 처리 등을 두고 ‘연계 투쟁’을 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여당이 국민의 참정권을 볼모로 삼아 연계투쟁을 벌인 것은 사상 처음일 것이다. 전국의 선거구가 모두 사라져버린 초유의 위헌적 사태를 방치·조장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이러고도 법률 준수니 법치주의니 하는 따위의 뻔뻔한 말을 할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볼 일이다.
합의 내용도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선거구 인구 편차를 2 대 1 이내로 조정한다고는 하지만 유권자가 행사하는 한 표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는 ‘투표 가치의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비례대표를 축소한 것은 여야의 짬짜미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승자독식 구도의 소선거구 체제에서 발생하는 사표를 최소화해 유권자의 의사를 더 충실히 반영하려면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 마땅한데도 오히려 숫자를 대폭 줄여버렸다.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정치에 반영하고,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 활성화로 이념과 정책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시대적 요청인데도 완전히 거꾸로 간 셈이다. 기득권 수호를 위해 비례대표를 희생양으로 삼은 새누리당이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그나마의 보완책을 당론으로 채택하고도 관철하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의 무능을 함께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구 획정 결과는 여당의 막무가내식 횡포, 여기에 힘없이 끌려다닌 야당의 허약성이 빚어낸 최악의 졸작으로, 한국 정치사에 큰 오점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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