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23일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구성을 발표했지만, 정작 집필진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은 전혀 없다. 집필진이 모두 47명이고, 그중 17명은 집필진 공모에 응한 56명 가운데 선정했다는 게 국사편찬위가 밝힌 내용의 전부다. 집필자들의 신상정보는 물론, 시대별 대표 집필자가 누구인지, 시대별로 몇 명씩 참여하는지, 사학 전공자와 비전공자 비율과 소속기관 비율은 어떤지 등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래서야 그들이 교과서를 집필한 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편향된 역사관을 지닌 사람은 아닌지 따위를 검증할 방법이 도무지 없다.
국사편찬위는 특히 “현대사를 보다 다양하고 깊이있게 서술하기 위해 정치·경제·헌법 등 인접 학문 전문가가 참여했다”고 밝혔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전공은 무엇이고 어느 기관 소속인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의 ‘불순한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애초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는 턱도 없는 비난을 했을 때, 그런 비난이 겨냥하는 곳은 대부분 현대사 서술 부분이라고 봐야 한다. 역사학자 다수가 동의한 근·현대사 서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역사학자들은 제쳐둔 채 어설프게 편향된 주장을 펼치는 비전공자들을 집필진으로 몰래 기용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렇잖아도 대다수 학자와 시민사회단체가 국정화에 반대하는 터여서 극소수 보수성향 인사들만 집필진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진작부터 있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군이 교과서 집필에 협조하고 있다”고 말한 바도 있다. 집필진이 이렇게 한쪽 방향으로 굳어지면 다양하고 깊이있는 역사 서술은커녕 역사적 진실에서 동떨어진 왜곡이 빚어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는 집필진 공개는 나중에나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가 어떤 내용으로 나올지 그저 눈감고 기다리라는 투다. 과거 교학사 교과서처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무수한 오류와 편향투성이의 책을 만들어놓고 막판에 공개해 밀어붙이겠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된다. 북한 같은 극소수 국가에나 있는 국정 교과서를 뒤늦게 만들겠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시대착오인데, ‘깜깜이 교과서’로 더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겠다는 꼴이다. 필진도 공개하지 못하면서 어찌 올바른 교과서가 나오겠는가.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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